출애굽기 6장은 모세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라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그보다 앞서 5장에서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5:2)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입은 여전히 둔하고, 바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7장에서 하나님은 그 말에 대답하십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5절)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고, 애굽 요술사들도 그렇게 하지만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킵니다. 그래도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13절). 바로의 거절조차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이 둔하다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1절)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 앞에 당신의 말씀을 들고 선 대리인으로 세우셨습니다.
3절부터 5절까지 「내가」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내가 표징을 행하고, 내가 손을 펴고, 내가 인도하여 내리라. 바로의 궁정에 서 있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이지만,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가 거절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계속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혼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입이 둔하다는 모세를 꾸짖고 끝내지 않으시고, 그 약함을 채울 아론을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4:14). 우리 곁의 동역자도 먼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동역자가 참 필요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함께 나아갈 때 그 동역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쓰임을 받습니다.
이 아침 두 가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동역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동역자가 되어 주고 있는가.
하나님은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7절) 하시고 나일 강을 치게 하십니다. 나일 강은 애굽의 생명줄이었습니다. 강이 피로 변해 백성은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습니다(23절).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마음을 닫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알림이 수십 번 울려도 메시지를 열어 보지 않으면 그 안에 무슨 말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네가 누구냐」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요 8:28)라고 대답하십니다.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신 말씀이 이 대답 속에서 다시 울립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장 분명히 드러난 자리는 피로 변한 나일 강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였습니다. 애굽은 심판을 겪으면서 여호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6:7) 하셨습니다. 언약 백성은 구원으로 여호와를 압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성령께서 닫혔던 우리 마음을 여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