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8.17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더라

창세기 26:18-25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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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창세기 26장 18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더라"라는 제목으로 새벽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땅은 말랐고 곡식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어 눈으로 보기에도 물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길을 주시겠다는 말씀도, 흉년을 끝내 주시겠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대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 우리는 흉년이 오면 방법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그 자리에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머문 이삭이 곧 무슨 일을 합니까?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죽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저질렀던 실패를 아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26장에서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흠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삭에게도 흠이 있음을 먼저 기억하며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첫째, 약속이 먼저였습니다. 이삭이 이 땅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담대함이 아니라, 3절에서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주목할 것은 그 원인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의 농사 기술도, 결단도, 지략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그 땅에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 순서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심었으니 하나님이 갚으셔야 한다"라는 계산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계산하는 순간 신앙은 거래가 됩니다. 성경은 항상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시고,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 그것이 순서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삭이 "그 모든 복을 얻었고 끝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더 좋은 본향을 바랐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받은 땅과 재물이 종착지가 아니라 앞으로 올 것의 그림자였음을 이삭은 알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습니다. 이삭이 부유해지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흙으로 메워 버립니다. 광야에서 우물을 메운다는 것은 생존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옮겨 가며 우물을 다시 팝니다. 다투면 또 옮기고 또 팝니다. 26장에서는 에섹, 싯나, 그리고 마침내 르호봇이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을 말씀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18절에 있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은 새 우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팠던 자리를 다시 팠고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을 그대로 불렀습니다. 이것은 근면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내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이자 행동이었습니다. 우물은 땅에 박아 놓은 언약의 표시입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근거는 이삭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그리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있습니다.

셋째, 제단이 먼저였습니다. 25절에서 이삭이 한 일의 순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제단을 쌓고, 둘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셋째 장막을 치고, 넷째 우물을 팝니다. 예배가 먼저였고, 집이 그다음이었고, 생계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으로 갔을 때, 풍토병과 환경으로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정착하며 제일 먼저 세운 것은 교회였고, 두 번째가 학교였고, 세 번째가 그들의 집이었습니다. 오늘 이삭도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부르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습니다. 우리는 순서를 바꾸려 하지 않습니까? 생계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집이고, 예배가 마지막으로. 그러나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흉년을 통과한 사람의 순서라고는 믿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이 우물과 제단은 우리를 한 곳으로 데려갑니다. 이삭이 얻은 것은 생수의 우물이었고,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파야 물을 얻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은 제단을 쌓아 짐승을 드렸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다시 파야 할 그 우물의 끝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메워진 우물이 있습니다. 끊어진 기도, 소원해진 관계, 눕혀 버린 말씀의 자리가 있습니까? 그 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흙으로 덮여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그 우물들을, 끊어진 기도를, 소원해진 관계를, 놓아 버린 말씀을 다시 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그곳에 먼저 와 계심을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 우물을 파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이삭처럼 두려움이 많은 자입니다. 담대해서가 아니라 주께서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오늘도 여기 서 있음을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애굽으로 서둘러 내려가지 않게 하시고, 머물라 하신 자리에 서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파는 인내를 더하여 주시고, 그 우물 끝에서 생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을 얻든지 먼저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내가 했으니 하나님이 갚으셔야 한다"는 거래식 신앙을 버리고, 약속을 믿고 순종하십시오.
  • 2눈에 보이는 애굽으로 서둘러 내려가지 말고, 머물라 하신 자리에 서 있으십시오.
  • 3메워진 우물 — 끊어진 기도, 소원해진 관계, 놓아 버린 말씀 — 을 다시 파십시오.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먼저 와 계십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삭처럼 두려움이 많은 자입니다. 담대해서가 아니라 주께서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오늘도 우리가 여기 서 있음을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애굽으로 서둘러 내려가지 않게 하시고, 머물라 하신 자리에 서 있게 하옵소서.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파는 인내를 더하시고, 그 끝에서 생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