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27장 18절부터 27절까지의 내용을 통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제 하루 크고 작은 결정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그중에 성경을 펴 보고 내린 결정은 몇 개나 됩니까? 오늘 본문에 한 노인이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졌고, 남은 감각을 전부 동원합니다. 만져 보고, 들어 보고, 맛을 보고, 냄새까지 맡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전부 틀렸습니다. 더 뼈아픈 것은, 이삭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써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없었던 것은 정보가 아니라, 말씀을 자기 판단 위에 세우는 자세였습니다. 세 가지로 살펴봅니다.
첫째, 그는 확인했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4절에서 이삭이 에서에게 말합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여기 "별미"라는 단어는 잠언 23장 3절에서도 쓰이는데, 거기서는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라고 말합니다.
18절에서 야곱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이삭에게 가서 "아버지여, 내가 별미를 만들어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네가 누구냐? 내 아들아, 네가 어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절)라고 묻습니다. 이삭은 눈은 멀었지만 머리는 흐리지 아니했습니다. 21절에서 결정적인 검증을 시작합니다. "가까이 오라. 내가 너를 만져 보려 하노라." 그리고 22절,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이삭이 말합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이삭의 귀는 정확했습니다. 그 귀가 진실을 잡아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무엇을 선택합니까? 감촉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23절에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원문에는 "그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째, 마지막 관문은 입맞춤과 냄새였습니다. 24절에서 이삭이 한 번 더 확인합니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진실은 여전히 그 방 안에 있었습니다. 이삭이 느꼈던 그 에서는 야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런데 25절에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의심이 풀린 것 같지만, 아직도 이삭은 의심합니다. "내가 네 옷의 향취를 맡고 싶다." 27절 마지막입니다. "그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야곱이 입은 것은 형의 옷이었습니다. 벌판에서 밴 땀 냄새가 찌든 그 옷의 향취를 이삭이 맡고, 완전히 무너집니다.
조심할 것은, 이삭이 눈이 멀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눈먼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눈은 멀었지만 남아 있는 감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삭이 무시하고 믿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자기의 손과 코로 재검토하려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기도해 봤는데 마음이 편해요." "이 길로 가니까 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느낌을 말씀의 자리에 앉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편한 것과 하나님의 뜻은 같은 말이 아님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 순간 이삭도 음식을 먹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버지를 속인 야곱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결국 야곱은, 형들이 요셉의 옷에 피를 묻혀 온 그 옷을 보고 속임을 당합니다. 아버지를 속였던 그 모습 그대로 야곱도 당하게 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이삭은 만져 보고 먹어 보고 냄새까지 맡고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감각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만졌고, 음성을 들었고,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요 1:10-11)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면 누가 알아볼 수 있습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은 예수님과 나란히 걸으면서도 눈이 가리어져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 24장). 그들의 눈이 열린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성경에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신 그 후였습니다. 그들은 "그가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삭은 손으로 더듬다가 틀렸고, 엠마오의 두 사람은 말씀이 풀리는 순간에 알아보았습니다. 알아보는 힘은 우리의 감각이 아니라, 자기를 말씀으로 열어 보이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새벽에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내 느낌을 성경 위에 올려놓지는 아니하였나, 내 생각과 경험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올려놓지는 아니하였나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하루 첫 판단부터 손으로 더듬지 마시고 말씀에 물으시기 바랍니다. 이삭이 놓쳤던 그 음성이 지금 여러분에게는 성경으로 활짝 열려 있음을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도 이삭처럼 손끝의 감촉과 입에 맞는 것으로 주님의 뜻을 재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편한 것을 주님의 허락으로 오해하고 살아온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새벽에 열어 주신 말씀이 오늘 하루 우리 판단의 첫 자리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각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우리를, 말씀으로 자신을 알아보게 하신 예수님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 항상 동행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