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43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라는 제목으로 이 새벽에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번 창세기 42장 마지막에 야곱은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라고 하면서 무너진 모습을 우리들이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의 르우벤은 자기 두 아들의 목숨을 걸고 베냐민을 데려오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 43장에서는 그 장면이 다시 보여지고 있죠. 기근은 그치지 않았고 양식은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유다가 나서게 되는데, 같은 위기 앞에서 이 르우벤과 유다가 보여주는 그 담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오늘 43장에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르우벤의 담보는 아들들을 걸었다는 거예요. 1절과 2절 말씀을 보면 기근이 심해지고 가져온 곡식이 다 떨어지자 야곱은 다시 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움직이지 아니하죠. 베냐민 없이는 그 사람 앞에 다시 설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또 그 시간만큼 집안의 양식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문제는 알고 있는데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들이 창세기 42장에서 르우벤은 자기의 두 아들의 목숨을 걸고 베냐민을 데려오겠다고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정말 진심이죠. 그러나 야곱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손자를 죽이는 것이 아들을 잃는 아픔을 조금 더 덜어주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남을 걸고 내미는 담보는 이렇게 아무리 진심이어도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위로가 되려면 담보는 나 자신이 되어야 된다라는 것을 우리들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두 번째는 유다의 담보예요. 유다의 담보는 자기 자신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 9절을 보면 이제 유다가 나서는 장면을 보게 돼요.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라고 이렇게 고백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담보라고 하는 뜻은 상거래에서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하면 대신 갚겠다고 서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죠. 대출을 받거나 또는 전세계약을 할 때 보증인을 세우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또는 집을 담보로 한다든지 아파트를 담보로 해야 된다라는 그런 말을 우리들이 듣죠. 이렇게 보증을 선다는 것은 상대가 갚지 못하면 내가 대신 갚겠다고 이름을 올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함부로 서주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보증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유다는 돈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 자기 목숨을 그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까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아들을 걸었고 유다는 자기 자신을 걸었습니다. 이 차이 하나로 야곱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을 하죠.
11절을 보면 처음으로 야곱이 "그리 할진대"라고 이렇게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야곱이 이제 드디어 그의 길을 연 것이죠. 그것은 참된 보증은 값을 치를 다른 무언가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데서 시작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유다가 이 말을 하기까지, 그는 창세기 37장에서 형제를 팔아넘긴 그 사람이었고, 또 38장에서는 며느리 다말 앞에 부끄러움을 당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담보로 설 때까지 이 유다에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우리들이 생각해 보게 되죠. 그래서 이 유다는 그 시간이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 것을 우리들이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야곱이 결단을 내립니다. 뭐라고 결단을 내리냐, "이르면 이르리로다"라고 이렇게 결단을 내려요. 11절에서 13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야곱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좋은 것을 예물로 담고 갑절의 돈을 준비시키고 베냐민을 드디어 보내게 되죠.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한 뒤에야 그를 내어놓습니다. 유다의 담보도 받고 또 야곱은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준비해서 이제 양식을 구하러 자녀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14절에 이제 야곱은 이렇게 고백을 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는 그가 벧엘로 도망칠 때도, 그리고 얍복강에서 씨름을 할 때도 그 곁을 붙들었던 바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잃으리로다"라고 하는 이 말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상실을 가리키는 그러한 무거운 말이죠. 야곱은 그 말을 자기 입으로 미리 해 보게 됩니다. 예물도 갑절의 돈도 유다의 담보도 결국 다 막을 수 없는 자리가 있음을 그는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준비를 다 마친 다음에야 하나님께 맡기는 자리로 그가 서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유다는 자기 자신을 담보로 내놓았지만 그 담보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유다가 아무리 애를 써도 베냐민의 생명을 살릴 힘은 그에게 없었다는 것이죠. 애굽 총리 앞에 서면 그의 목숨도, 그리고 형제들의 목숨도 유다의 손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우리에게 진짜 참된 담보가 되시는 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2절 말씀에 보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라고 이렇게 기록을 해주고 있습니다. 유다는 목숨을 걸겠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유다의 보증은 베냐민을 무사히 데려오는 데서 끝났지만 예수님의 보증은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데까지 내려간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되죠. 유다는 갚을 힘이 없어도 서약할 수는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값을 실제로 다 갚으신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우리들의 자리를 한번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여러분 대신 나서서 "내가 담보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해 주기를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런데 그 말은 이미 오래전에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성취해 주신 것을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나를 위하여서 담보가 되어주시고 나를 위하여서 보증을 서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여러분들이 믿으시고 오늘 하루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르우벤처럼 남을 앞세우고 자기 자신은 뒤로 감추려 했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유다처럼 제 자리에서 책임을 지고 자기 자신을 내어놓을 용기를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자리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오늘 하루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