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애굽기 5장 1절에서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라는 제목으로 오늘 추석 명절 새벽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지난 시간에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리고 백성에게로 내려가죠.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머리 숙여서 경배하였다라고 이렇게 마지막 절에 기록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5장에서는 그러한 백성들의 신임을 얻고 이제 모세가 바로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게 됩니다.
모세의 생각에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고 또 백성들도 이렇게 인정을 해주고 하여서 어쩌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잘 진행될 것이다 라는 그런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상황과 현실은 그렇게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 5장에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졌다라는 것을 오늘 우리들이 보게 되는 거예요. 사실 우리들이 새로 마음을 먹고 시작을 하려고 했는데 모든 상황과 여건이 여의치 않은 그러한 모습들, 우리들에게도 자주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을 통해서 보면 이제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때 바로의 대답은 「여호와가 누구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 라고 이렇게 바로가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일이 어렵지 않고 쉬우니까 다른 생각을 하는가 보다 해가지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을 더 부과를 시킵니다. 그날로 바로는 명령을 내려서 벽돌에 섞을 짚을 더는 주지 말라고 명령을 하고, 너희가 직접 주워오고 그럼에도 벽돌 수는 하나도 줄이지 말아라 라고 이렇게 명령을 내리죠. 오히려 이 백성들은 점점 더 고난과 고초가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바로에게 가서 일이 너무 과하다, 일이 너무 무겁다 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너희가 게으르다, 너희가 게으르다」 라고 하는 그러한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담함을 갖게 되죠.
그래가지고 그들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되고 어렵게 되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이제 바로를 원망하거나 그들의 처지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 그 원망의 화살을 누구에게 돌리냐 하면 모세에게 그 원망의 화살을 돌리게 됩니다.
사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전했고, 또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세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자기들의 기도와 자기들의 눈물과 자기들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듣고 그리고 보고 그리고 「내가 내려가서 너희들을 건지겠다」라고 하는 그 말씀에 이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였지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서 그 소리는 원망의 소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결국 모세에게 다 전가가 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원망을 다 뒤집어썼어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뭔가 선한 일을 하고 뭔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하였는데 그런 상황이 잘 풀리지 아니하였을 때에, 혹 내가 또 다른 원망을 받고 그리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부터 비난을 받을 때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까요?
오늘 모세의 모습을 보면 모세는 다시 여호와께로 찾아갔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로 찾아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호소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더 나빠진 그 상황에서 모세는 하나님께로 찾아가요. 하나님께로 찾아가서 하나님께 이제 하소연을 합니다. 백성을 달래러 가지도 아니하였고, 그리고 바로와 다시 타협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 바로와 흥정을 하려고 하지도 아니하였고, 또 예전처럼 미디안으로 도망가지도 아니하고, 그는 하나님께로 찾아갑니다. 하나님께로 찾아가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되는 것이죠.
시편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라는 그런 표현이 많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서 이런 일이 있습니까?」 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이 「어찌하여」라고 하는 이 표현은 어떻게 보면 불평과 그리고 불만의 소리 같지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 그러한 고백이고 그러한 모습이다라는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모세도 방금 말씀을 드렸지만 그의 힘으로 백성들을 설득하고, 또 바로와 흥정하고, 아니면 이전처럼 미디안으로 도망가고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어찌하여」라는 그런 모습과 같이 다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간 모습을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에 길이 막혔을 때에 다른 길을 혹 선택하지는 아니합니까? 그런데 모세는 「어찌하여」라며 하나님께 더 매달리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왔던 모습을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모습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면 모세는 하나님 앞에 「어찌하여」라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다가갔어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도 시편 22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위에서 그런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있어요.
다시 보면 모세가 겪은 일과 예수님이 겪은 일이 같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모세는 그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는 버려지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그리고 또 하나님께로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그 자리에서 버림을 받으심으로 인하여서 우리가 버림받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 예수님께서 대신 버림을 받으셨다라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셨다라는 것을 말씀을 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버림받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셔서 버림받으셨다라는 것을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다시 그 예수님을 부르짖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을 다시 부활로서 살려주시고,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대답, 하나님의 응답이 아직 오지 아니하였을 때에 「어찌하여」라며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우리들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끝까지 걸어가신 길이기 때문이다 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도 이 아침에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우리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걸어가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들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걸어갔는데 짐이 더 무거워진 자리에서 우리는 사람을 탓하고 때로는 뒤로 물러서지는 아니합니까? 걸어가신 아버지 하나님, 그러할 때에도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와 아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버림받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응답을 기다리는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하여 주시고 우리 주님과 함께 걸어갈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