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장 끝에서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했습니다. 백성의 신임을 얻은 모세는 이제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고 백성도 인정해 주었으니, 모세는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릴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5장에서 상황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하며 거절하고, 백성의 짐은 도리어 더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진 것입니다. 새로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모든 여건이 여의치 않은 일은 우리에게도 자주 찾아옵니다.
모세는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1절) 바로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2절)
바로는 백성이 일이 쉬워서 딴생각을 한다고 여기고 그날로 명령을 내립니다. 벽돌에 쓸 짚을 더는 주지 말고 스스로 주워 오게 하되, 벽돌 수는 하나도 줄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7-8절). 일이 너무 무겁다고 호소하는 백성에게 돌아온 말은 「너희가 게으르다 너희가 게으르다」(17절)였습니다. 백성은 참담해졌습니다.
고통이 커지자 이스라엘 기록원들은 원망의 화살을 바로에게 돌리지 않고 모세에게 돌립니다.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21절) 얼마 전 하나님을 경배하던 소리가 금세 원망의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말씀대로 전했을 뿐인데, 백성의 모든 원망을 다 뒤집어썼습니다. 우리도 선한 일을 하려 했는데 일이 풀리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과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성경은 모세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22절) 모세는 백성을 달래러 가지도, 바로와 다시 타협하거나 흥정하려 하지도, 예전처럼 미디안으로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찾아가 억울함을 아뢰었습니다.
모세는 3장에서 「건져내리라」 하신 약속을 뒤집어 「조금도 구원하지 아니하신다」고 돌려 드립니다(23절). 이 말을 믿음 없는 말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없고, 훌륭한 기도라고 치켜세울 수도 없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가 간 곳을 적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시편에도 「어찌하여」라는 부르짖음이 많이 나옵니다. 불평이나 불만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고백입니다. 순종했는데 길이 막혔을 때 우리는 다른 길을 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찌하여」라며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편의 말씀으로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그러나 모세가 겪은 일과 예수님께서 겪으신 일이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도, 하나님께도 버림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셔서, 우리가 버림받지 않도록 우리를 대신해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5장은 대답 없이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3장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계셨습니다(3:7). 그 말씀은 이 순간에도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