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강해 · 2026.10.07

지식은 부풀리고 사랑은 세웁니다

고린도전서 8:1-13 · 고린도전서 강해 · 2026.10.07 조회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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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린도전서 8장 말씀을 통해서 「지식은 부풀리고 사랑은 세웁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말로 사람을 세우는 경우도 있고, 말로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행동으로도 사람을 세우는 경우가 있고, 행동으로도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7장에서는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겨야 한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오늘 8장은 그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형제들과, 이웃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를 말해 줍니다. 여기서 형제라고 하는 것은 친형제가 아니라 교회 안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질문을 합니다. 7장 1절에서 한 번 질문했고, 25절에서 처녀에 대해 질문했고, 오늘 8장에서 세 번째로 우상의 제물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상 앞에 드려진 제물을 먹어야 합니까, 먹지 말아야 합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당시 우상 앞에 드려진 제물은 신전에서 제사를 드린 뒤에 시장에서 팔기도 했고, 모임의 잔치상에 오르기도 했고, 서로 나누기도 했고, 가족 잔치에서 먹기도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우상 앞에 드려진 것이라고 해서 거부하면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 바로 이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먹어도 된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이걸 안 먹으면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도 없고 가족 잔치나 행사에 참석하지도 못하게 되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 또 먹지 않음으로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이 오늘 8장의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지식은 그들의 자신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 그 자신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교만하게 한다는 말은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린다는 뜻입니다. 지식은 풍선처럼 부풀리고 사랑은 벽처럼 사람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풍선은 크게 부풀지만 작은 바늘 하나에 터집니다. 풍선이 여러 개 있으면 보기는 좋지만 바늘 하나 때문에 터집니다. 사랑은 벽입니다. 벽은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친 사람, 힘든 사람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은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자기만 부풀리고 자기만 만족하다가 헛것이 될 수 있고, 사랑은 볼품은 없지만 누군가 와서 기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사도 바울이 오늘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아져서 하나님에 대한 것이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너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알아 주신다, 하나님이 너를 기억하고 계신다, 그것이 너희에게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더 공부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는 것 같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 교만으로 흐르면 하나님에 대한 지적인 지식만 높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식이 높아져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알아 주시는 것입니다. 내 신앙이 얕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비록 신앙이 약하고 성경 지식이 약하고 기도가 서툴러도, 하나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나를 아신다면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되고 더 큰 은혜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알고 있는 지식이 헛것이냐,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너희가 아는 지식도 옳고 귀합니다. 하나님이 온 천지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에게서 1년 6개월 동안 열심히 배운 그 지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8절에서도 음식이 중요하지만, 그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우상 제물이니까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구가 중요하고 대인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마음에 정리하고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인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해도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을 미루든지 포기하든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나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와 음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의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나는 자유하니까, 나는 권리가 있으니까, 우상 앞에 드려졌던 음식이 시장에 나오든 모임이나 가족 잔치에 나오든 나는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이것을 내가 먹어도 되나, 저건 우상 앞에 드려진 것인데, 아직 나는 믿음이 약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음식을 먹는 믿음 있는 사람을 보고 따라 먹으면,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결국 무너지게 된다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지식이 부족하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내가 아직 옛 생활과 옛 삶을 다 버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성경 지식이 없다, 성경 공부를 다 마치지 못했다, 기초만 배웠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연약한 자는 아직 옛날에 살던 습관과 모습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우상 같은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 먹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상 앞에 드려진 것이니 먹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조금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믿음 있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것을 보면, 내가 이것을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으로 먹으면 옛날에 먹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옛날에 먹던 그 고기 맛, 그 음식 맛이 되살아납니다. 이 사람은 옛날의 삶과 옛날의 습성을 버려야 하고 멀리해야 하는데,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음으로 옛날 생각이 자꾸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더 성장하겠습니까, 아니면 계속 지체되거나 무너지겠습니까? 믿음이 결국은 무너지게 된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믿음이 있어서 음식을 먹어도 네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칭찬할 만하다. 너에게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 행동을 할 때 네 옆에 누가 서 있는지 돌아보아라.

우리가 말로 사람을 세우고 말로 사람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내 말을 들을 사람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처럼,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는 네가 행동할 때에도 네 옆에 누가 있는지 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으니 무조건 양보하고, 누가 불편해하면 무엇이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약한 형제, 믿음이 적은 자는 내 자유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를 보고 자기 양심을 거슬러 따라 하다가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옛 생활을 다 끊지 못하고 절반을 가지고 있는데, 믿음 있는 사람이 다 하니까 이래도 되나 하면서 따라 하다가 결국 넘어지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을 사도 바울은 약한 사람,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네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네 옆에 약한 자, 믿음이 적은 자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8장을 시작할 때 사도 바울은 「지식이 있는 자」라고 부르다가, 뒤로 갈수록 「형제」, 「형제」, 「형제」라고 말합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내 옆의 형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생각하고 주의해야 합니까? 그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피값으로 그 형제를 사셨기 때문에, 그 믿음이 연약한 형제도 그만큼 소중하고 귀합니다. 그가 아직 믿음이 연약하고 옛 삶을 다 끊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그 값으로 그 형제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 형제를 실족하게 만들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 자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초신자니까, 지식이 없으니까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대하고 부족하게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은혜를 입은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혼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못 하게 막기도 합니다. 그런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 어린 영혼도 예수님께서 피값을 치르고 사신 자들입니다. 어른만 소중하고, 헌금을 많이 내고 십일조를 많이 내는 사람만 예수님께서 피값으로 사신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어린아이들도 피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다 동등합니다. 그런데 그가 약자라서, 연약해서, 부족해서 우리가 그를 무시하고 상처받을 만한 일을 한다면,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은 그 약자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잘못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과 식사를 마치신 뒤에 대야를 가지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께서 내 발을 씻기십니까 하자, 예수님은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지식에 있어서는 어떤 제자보다 충만하고 풍성하신 분이셨지만, 그분이 무릎을 꿇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아, 너희가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연약한 자를 위해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말합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나만 생각하고 내 위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First, Jesus. Second, Others. Third, You. 조이(JOY) 선교회가 그런 뜻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이웃, 셋째는 당신, 내 자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상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지식이 있다고 나부터 생각하고, 나는 자유할 권리가 있다고 나만 하지 말고, 연약한 형제들을 생각하라. 그 형제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연약한 형제다. 아직 옛것에서 다 벗어나지 못하고 이제 막 벗어나려고 하는 그 형제들을 생각해서 그들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을 무너뜨리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지식은 너희를 교만하게 하고 풍선처럼 부풀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웃과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서, 말로도 사람을 세우지만 행동으로도 사람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든 사람, 지친 사람이 와서 기댈 수 있는 사랑의 벽이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알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 더 크고 놀라운 은혜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자유가 나를 교만하게 하는 데 쓰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처럼 주님의 형제들을 위하여 더 귀하게 쓰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의 발을 씻겨 주시고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설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이번 주 내가 자유롭게 하는 행동 하나를 떠올리고, 그 자리에 누가 나를 보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 행동이 그 사람을 세우는지, 양심을 거슬러 따라 하다 넘어지게 하는지 물어보십시오.
  • 2신앙이 얕다고, 기도가 서툴다고 스스로를 낮추고 있다면 3절을 붙드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알아 주시고 내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 3교회 안에서 가볍게 대했던 사람, 초신자나 아이 한 사람을 떠올리고 "이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마음으로 이번 주 한 번 먼저 다가가 기댈 수 있는 벽이 되어 주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알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자유가 우리를 부풀리는 데 쓰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피값으로 사신 연약한 형제를 세우는 데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먼저 무릎 꿇고 우리 발을 씻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힘들고 지친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사랑의 벽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