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9.08

알아본 사람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

창세기 42:1-24 · 2026.09.08

본문 개관

어제 본문의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더라"(41:57). 굶주린 세상이 한 사람에게로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줄에 낯익은 얼굴 열 사람이 함께 서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입니다.

구덩이에 아우를 던진 지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그 일을 묻어 둔 채 그냥 살았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짐승에게 찢겼다고 말했고, 서로에게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묻어 두면 없어지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아우 앞에 형들이 서게 됩니다. 그것도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로 섭니다.

오늘 본문은 두 종류의 눈을 나란히 놓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8절). 알아본 사람이 있고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끝에 가면 형들도 마침내 무언가를 알아보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묵상

1. 바라보고만 있던 사람들은 내려가야 합니다

1절에서 야곱이 아들들을 나무랍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은 이미 다 들은 뒤입니다. 그런데 다 큰 아들 열 사람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합니다.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2절).

굶주림 앞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서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누가 먼저 나서나, 서로 눈치를 봅니다. 나서면 손해 볼 것 같고, 말을 꺼내면 내 몫이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뭅니다. 그러나 곡식은 바라본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내려가야 얻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도 "저것은 정리해야 하는데" 하면서 몇 달째 바라보고만 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미뤄 둔 관계 하나, 꺼내지 못한 말 한마디, 손대지 못한 자리 하나. 오늘 그것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려간 것은 배가 고파서였지만, 하나님은 그 굶주림으로 그들을 아우 앞으로 데려가고 계셨습니다. 3절,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6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이 장면에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요셉이 열일곱에 꾸었던 꿈입니다.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37:7).

바로 그 꿈 때문에 요셉은 미움을 받았고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형들은 그 꿈을 없애려고 아우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스무 해가 넘어서, 곡식 단이 아니라 곡식을 사러 온 형들 자신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요셉이 애써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그 세월 동안 종이었고 죄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칠 년 기근을 통해 다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붙들고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2. 요셉은 알아보았고 형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7절입니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여기 '모르는 체하다'라는 말은 낯선 사람처럼 군다는 뜻입니다. 알면서 모르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이 그것을 다시 못 박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형들이 못 알아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스무 해가 지났고, 눈앞의 사람은 애굽 옷을 입고 애굽 말을 하는 총리였습니다. 그들이 팔아넘긴 것은 열일곱 살 소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없애 버렸다고 여긴 것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 문장을 나란히 놓습니다. 한쪽은 다 알고 있고, 다른 쪽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어긋남이 오늘 본문 전체를 끌고 갑니다.

9절을 보면 요셉이 무엇을 했는지 나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한 일은 복수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억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삼 일을 가둡니다(17절). 성경은 이 대목에서 요셉의 속마음을 한 줄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되갚음이 아니라 그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끌기 위한 사흘이었습니다. 그 사흘 만에 형들의 입이 열립니다.

18절에서 요셉이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이 말은 종살이할 때도, 감옥에서도, 바로 앞에서도 그를 붙들어 준 자리였습니다. 이제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 앞에서도 그 자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아는 힘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서 나옵니다. 원수를 갚을 힘이 손안에 있었는데도 요셉은 그 손을 하나님 앞에 두었습니다.

3. 형들이 알아본 것은 자기들의 죄였습니다

21절입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사흘 만에 형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것입니다. 여기 "범죄하였도다"는 값을 치러야 할 죄를 졌다는 말입니다. 스무 해 동안 아무도 꺼내지 않았던 그 일을, 이제 형들 스스로 꺼내 놓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한마디가 들어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이 말은 37장에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소년이 울며 빌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스무 해가 지난 뒤에 형들의 입으로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날 그들은 구덩이 곁에 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37:25). 그 밥상 아래에서 아우의 울음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는 잊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미뤄져 있었을 뿐입니다.

22절에서 르우벤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르우벤은 그날을 그렇게 기억합니다. 실제로 그는 아우를 죽이려는 형들을 말려 구덩이에 넣게 했습니다(37:21-22). 그러나 말리기만 하고 끝내 형들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말리기만 하고 막지 않은 사람의 말은, 세월이 지나면 결국 자기를 빼내는 말이 되고 맙니다. 옳은 말을 했다는 것으로 자기 몫의 책임을 면제받을 수는 없습니다.

23절이 이 장면의 무게를 드러냅니다.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형들은 자기들끼리 히브리 말로 실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다 알아듣는 사람이 바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24절,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형들의 실토를 들은 요셉의 첫 반응은 고발이 아니라 울음이었습니다. 그가 스무 해 동안 기다린 것은 형들의 사과가 아니라 형들이 돌아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더 기록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예수님도 자기 사람들 앞에 서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요셉은 통역을 세워 두고 돌아서서 울었지만, 우리 주님은 통역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우리말로 오셨고, 우리 앞에서 우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한 그 밤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눅 22:61). 그 눈길 앞에서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62절). 그가 알아본 것도 자기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 눈길은 정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2). 형들의 실토 앞에서 돌아서서 우신 요셉의 얼굴 뒤에, 우리를 위해 먼저 기도하고 계신 주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를 보고 계시는 그 눈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적용

  • 1몇 달째 서로 바라보고만 있던 일 하나를 오늘 적어 놓고, 그중 한 가지를 오늘 안에 시작합니다. 곡식은 바라본다고 나오지 않고 내려가야 얻습니다.
  • 2묻어 둔 이름 하나를 하나님 앞에 꺼내 놓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다시 마주할 용기를 내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알아보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 은혜에 기대어, 잊혔다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미뤄져 있었을 뿐임을 인정하고 기도로 아룁니다.
  • 3옳은 말만 하고 막지는 않았던 자리가 있는지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말리는 데서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알아보시는 하나님 앞에 이 새벽 우리가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몰라볼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몰라보신 적이 없으심을 감사드립니다. 서로 바라보고만 있던 저희를 오늘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오래 묻어 둔 이름과 오래 듣지 않으려 했던 그 소리를 하나님 앞에 꺼내 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죄를 알아보게 하시되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알아보지 못할 때에도 먼저 저희를 알아보시고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의 눈길을 오늘 하루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역도 세우지 아니하시고 우리말로 오셔서 우리 앞에서 울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