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9.18

같은 낱말, 다른 계획을 세우신 이

창세기 50:15-26 · 2026.09.18

본문 개관

창세기의 마지막 장입니다. 야곱은 숨을 거두었고 아들들은 그 시신을 가나안으로 옮겨 막벨라 굴에 장사합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 길 위에서 형들의 마음에 오래 눌러 두었던 것이 다시 올라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 전한 말은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네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야곱이 실제로 그런 말을 남겼는지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형들이 그렇게 전했다고만 기록합니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이 다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급함 앞에서 요셉이 웁니다. 그리고 창세기 전체를 한 문장으로 묶어 주는 대답을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사건인데 계획은 둘이었습니다.

묵상

1. 두려움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형들과 요셉 사이는 오래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그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아 주던 사람이 아버지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눌려 있었는데, 야곱이 떠나자 그 무게중심이 요셉에게로 옮겨 갑니다. 형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우리를 미워하여 그 모든 악을 다 갚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라질 때 눌려 있던 것이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형들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이미 오래전 애굽에서 형들을 안고 울며 용서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백지처럼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꺼림칙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사하셨다고 성경이 말씀하는데, 어느 순간 옛 죄가 다시 올라와 마음을 흔듭니다. 그 느낌 자체가 용서받지 못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자라나 나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지우고 다시 은혜 앞에 서야 합니다. 두려움은 용서를 의심할 때 자라고, 용서는 말씀을 붙들 때 확인됩니다.

2. 같은 낱말, 다른 계획을 세우신 이

요셉의 첫 마디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나에게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신 분이 따로 계십니다. 요셉은 그 자리에 자기가 올라서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형들의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처분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의 중심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여기서 해하려 하였다는 말과 선으로 바꾸셨다는 말에 같은 낱말이 쓰였습니다. 계획했다는 뜻입니다. 형들도 계획했고 하나님도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팔아넘긴 일은 실제로 악이었습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형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악을 시키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그 악이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악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그것도 다 뜻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악은 악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 악 위에서 전혀 다른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같은 구조로 십자가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악한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손이 움직인 그 사건의 마지막 페이지를 하나님이 친히 쓰셨습니다. 나를 향해 움직이는 계획이 있습니까. 그보다 크신 하나님의 계획이 그 뒤에 있습니다.

3. 관 속에서 기다리는 약속

요셉은 백십 세를 살고 죽습니다. 마지막에 형제들을 불러 말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내시리라. 그러니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애굽의 총리로 살다가 애굽에서 죽어 애굽 땅에서 입관되었습니다. 창세기는 그 관에서 끝납니다. 미완결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결과를 다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드린 기도, 후손을 위해 드린 기도의 열매를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관은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약속을 붙든 자리였습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페이지가 있습니까. 그 마지막 페이지는 언제나 하나님이 쓰십니다.

오늘의 적용

  • 1용서받은 뒤에도 옛 죄가 올라와 마음을 흔들거든 그것을 용서의 취소로 여기지 말고, 죄 사함의 말씀을 소리 내어 붙들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 2나를 아프게 한 사람의 일을 좋게 포장하지 말고, 그 악의 처분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구합시다.
  • 3내 눈으로 결과를 보지 못할 기도라도 오늘 자녀와 후손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드립시다.

기도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 창세기의 마지막 장까지 인도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용서받은 자로 살면서도 자꾸 올라오는 꺼림칙함에 눌리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으로 그 마음을 씻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당한 악을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원한으로 품지도 말게 하시며, 갚으시는 권한이 주님께 있음을 믿고 그 처분을 주님께 맡기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손이 움직인 그 자리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아직 열리지 않은 우리의 페이지도 주님께서 마무리하실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관 속에서도 약속의 땅을 바라본 요셉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붙잡는 하루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