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죽음에 임박하여 열두 아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마지막 말을 남기는 장면입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침상에 앉아 아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앞날을 말해 주는 유언입니다. 지난 장에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손을 얹었고, 이제 자기 아들들 전부에게 차례로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이 유언은 듣기 좋은 덕담이 아닙니다. 장자 르우벤에게서 시작되는 말은 축복으로 시작했다가 곧 꺾이고,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러서는 아예 책망이 됩니다. 그러다 넷째 유다에게 와서 흐름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잃어버린 축복의 자리를 지나 얻게 되는 축복의 자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은 유다에게 주어진 한 마디에 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마지막 호흡으로 남긴 이 말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수천 년을 건너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부터 부릅니다. 르우벤을 두고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고 부릅니다. 여기까지는 더없이 높은 말입니다. 그런데 곧이어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오래전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던 그 죄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기록되고,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유언이 남습니다. 세겜에서 저지른 그 폭력이 수십 년이 지난 아버지의 마지막 말 속에서 다시 한 번 되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곧 후손 모두를 영원히 묶어 두는 저주는 아닙니다. 훗날 레위는 광야에서 하나님 편에 서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시내산 아래 이르렀을 때, 모세가 율법을 받아 산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백성은 금송아지를 세우고 광란에 빠지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때 레위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흩어지리라 하신 그 말씀 그대로 레위는 각 지파 가운데 흩어졌는데, 그 흩어짐이 저주가 아니라 제사장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레위가 스스로 자격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자리를 새로 정해 주신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곧 내 죄의 결과라고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설령 내가 심은 것을 지금 거두고 있는 자리에 서 있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끝이 아닙니다. 그 자리를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유다의 차례가 됩니다.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앞선 세 형이 잃어버린 축복을 들었다면 유다는 정반대로 얻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유다를 사자 새끼라 부르고 이어서 말합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규는 왕이 손에 쥐는 홀이고,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왕권이 유다 지파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옛사람들이 여러 갈래로 읽어 왔습니다만, 어느 쪽으로 읽어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유다 지파에 맡겨진 왕권이 다윗을 거쳐 마침내 한 분에게로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맨다고 표현합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어 두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풍성한 땅을 그리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흠 없는 아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다는 며느리를 속이고 뒤늦게야 자기 죄를 인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 약함과 부끄러운 과거가 하나님의 약속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약함이 있든지 부끄러운 과거가 있든지 그것으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막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큽니다.
야곱의 유언은 유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곱은 남은 아들들에게도 한 사람씩 말을 건넵니다. 어떤 아들은 해변에 거하리라 하고 어떤 아들은 이리처럼 움킬 것이라 합니다. 듣기에 흐뭇한 말도 있고 아픈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언의 마지막 절은 야곱이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고 기록해 줍니다. 흠이 있든지 없든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열두 아들 가운데 흠 없는 자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 부족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록에서 내 이름을 지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유다는 흠 없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계보에 왕권을 주셨고,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는 규라는 그 말씀대로 다윗을 거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기록합니다. 무엇으로 이기셨습니까. 힘으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 히브리서도 우리 주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증언해 줍니다. 그래서 유다처럼 흠 많은 우리의 이름도 그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