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당시 성경과 설교가 라틴어로만 전해져 성도들은 말씀의 뜻을 알지 못했고, 교회는 값을 치러야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며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옮기며 말씀에 그런 가르침이 없음을 보았고,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표어를 내걸었습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 종교개혁을 일으킨 그 말씀을 함께 살펴봅니다.
지난 시간에는 로마서 8장 1절에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의 배경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 사람이 자기 행위로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고발한 뒤, 21절에서 「이제는」 하고 반전시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선언합니다.
연말이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그 핵심은 학력과 경력, 그리고 내가 낸 성과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으로 사람을 뽑고, 교회도 사역자를 세울 때 경력을 봅니다. 문제는 로마의 성도들이 그 인정받는 방식을 하나님 앞에까지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봉사와 헌신을 내밀어 하나님께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세상에는 학연·지연, 누구 라인 같은 줄이 있고 그 줄에 선 사람만 혜택을 받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이르는 줄은 다른 줄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줄에는 차별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동일한 은혜를 누립니다.
23절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을 「내 자격이 모자랐구나」로 오해하면 또 증명하려 애쓰게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도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뜻이지, 자격증이나 경력이 부족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루터가 가장 두려워한 구절은 로마서 1장 17절의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수도사로 하루 종일 말씀 곁에서 살면서도 「이렇게 살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떨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잘 보여야 하고 업적과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은 두려움이고 무거운 짐입니다. 이방 종교와 우상은 섬기는 자들에게 두려움과 짐을 지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시고 없이 하시는 분입니다.
24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값없이」는 요한복음 15장 25절에서 예수님께서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고 하신 그 말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떤 조건 때문에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생일 선물을 받고 계좌이체로 갚으면 선물이 선물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기브 앤 테이크, 품앗이, 경조사의 주고받기가 몸에 배어 있어서 받기만 하면 불편해합니다.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과 믿음은 선물이며, 그 대가를 우리가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값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대신 치러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내야 할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가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던 지성소를 백성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아무도 그 속을 몰랐던 청와대처럼 말입니다. 「세우셨다」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자리에 두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