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 있는 감사의 달입니다. 이 본문은 흔히 감사의 설교로 읽히지만, 오늘은 감사의 크기나 내용보다 감사의 방향, 곧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는 "고맙습니다" 하고 말은 하지만 시선은 선물에 가 있습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해서 취업이 되면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무슨 옷을 입고 갈지, 몇 년 일해 집을 사고 언제 결혼할지 계획을 세웁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마음의 방향이 선물에 더 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의 한 마을에서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나십니다. 마을 밖에 살며 사람이 다가오면 오지 말라고 외쳐야 했던 그들은 멀리 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높입니다. 예수님은 손도 대지 않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만 하셨고, 그들은 그 말씀을 믿고 가다가 깨끗함을 받습니다.
열 명이 똑같이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홉은 그 선물로 끝났고, 한 사람은 선물을 주신 분께 돌아왔습니다.
아홉 명은 나은 것을 깨닫고 곧장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몸이 깨끗해져 성 안에 들어가 가족을 부둥켜안고, 다시 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쁜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마음에는 선물이 더 컸습니다. 은혜가 누구에게서 왔는지 알지 못하니 선물을 받은 것으로 만족한 것입니다.
그중 한 사람은 '이 은혜가 나에게 왔구나' 하고 알아보았습니다. 그에게도 가족을 만나고 삶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똑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것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분께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감사는 은혜를 주신 분을 알아볼 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를 알아보는 눈입니다. 구원과 놀라운 은혜를 입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면 감사하기 어렵지만, 나를 구원하신 분이 누구인지 알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나병환자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뒤 이 한 사람은 예수님께 다가와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이 왔습니다. 은혜는 이처럼 은혜 주신 분과 은혜 받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줍니다.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분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내가 돌아서서 그 발 앞에 무릎을 꿇으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감사를 주고받으면 관계가 가까워지듯,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가 더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감사는 방향입니다. 은혜가 크면 감사도 크고 적으면 감사도 적은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고 선물 주신 분께 돌아서는 것이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에서 엘리사 시대에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이방 장군 나아만만 깨끗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온 이 한 사람도 사마리아 사람, 이방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성전 바깥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고, 안뜰로 넘어가는 경계에는 이방인이 넘어오면 죽는다는 경고문이 있었습니다. 고침 받은 아홉은 성전으로 갔지만 이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무릎 꿇은 그 발은 곧 십자가에 못 박힐 발이었습니다. 그 발 앞에 사마리아 사람이 먼저 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 앞에 무릎을 꿇습니까? 우리도 이 사람처럼 예수님의 발 앞에 나아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이 이방인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며 그도 일상으로 보내십니다. 아홉도, 한 사람도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는 예수님께 돌아오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아홉은 이전처럼 그대로 살아가겠지만, 이 한 사람은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붙들며, 은혜 주신 분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아홉과 한 사람의 큰 차이입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