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5장의 말씀을 통해 새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얻고자 합니다. 창세기 4장은 가인의 후손으로 이어진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창세기 5장은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다 잃고 셋을 낳아, 그 셋을 통한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계보는 죽음의 현실 속에서도 약속의 씨앗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3절을 보면, 아담이 셋을 낳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타락 이후에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으로 인해 변질되고 오염되고 많은 것을 잃었지만, 취소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5장을 통해, 아담의 후손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타락한 아담의 본성도 우리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담부터 라멕까지 보면 "다 죽었더라, 죽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3장에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종착점은 반드시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하고, 로마서 5장 12절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옛날에 중국의 진시황이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했지만, 결국 인간은 다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1절 이하를 보면,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후렴처럼 강조합니다. "동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 다녔다는 히브리어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0년이라는 기간이 아니라, 에녹이 누구와 동행했느냐, 그 방향입니다. 동행의 길이가 아니라 동행의 방향이 우리 인생을 결정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내가 몇 년 신앙생활을 했다, 내가 오래된 신앙이다, 내가 직분을 받고 오랜 시간 섬겼다" 하는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어떤 방향으로 동행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방향으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에녹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기록합니다. 둘째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고, 내가 기뻐하는 것은 짐승의 제물이나 기름진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예배와 경배입니다. 레위기 제사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번제나 화목제나 속죄제나 속건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경배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다는 것은, 그에게 믿음도 있었고 순종도 있었고 예배도 있었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네 가지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어 천국을 향한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나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아는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29절에 "라멕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기록합니다.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안위하리라는 이 말씀이 어디에서 성취됩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됨을 봅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이 안위 받고 평안을 얻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이루시는 것을 저희가 봅니다. 오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간이 아니라, 길이가 아니라 방향을 바로 잡고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과 순종과 예배와 사랑을 실천하며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안위하시고 위로하시고 평안케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