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14장 17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제목으로 새벽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두 종류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나와서 나중에는 예의 없는 요구를 던진 소돔 왕이었고, 또 한 사람은 떡과 포도주를 손수 들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한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두 왕을 나란히 세워 놓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 삶에 찾아와 나를 맞이하는 이는 누구인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결국 내 몫을 요구하는 세상인가, 아니면 먼저 축복하고 먼저 내어 주는 하나님의 제사장인가?
특히 본문 18절이 오늘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왕과 제사장이 누구신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언급이 없는 인물입니다. 족보에도 없고 예고도 없이 등장했다가 세 구절 만에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소개하며 "왕"과 "제사장"이라는 두 단어를 함께 씁니다. 성경 전체에서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곳이 이 구절입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 제도가 있기 수백 년 전에, 하나님은 이미 한 사람을 통해 왕이며 동시에 제사장인 존재를 보여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이 손에 든 것은 무기가 아니라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소돔 왕은 아브라함을 맞으러 나올 때 빈손으로 나왔지만, 멜기세덱은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떡과 포도주를 내어 왔습니다. 그의 이름과 나오는 방식 모두가 소돔 왕과 대조됩니다. 소돔 왕은 싸우러 나왔지만 살렘 왕은 나누어 주기 위해 왔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아 왔습니다. 히브리서 5장과 7장은 이 짧은 세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을 레위 지파의 혈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고 선언합니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은 죽으면 끝나지만, 시작도 끝도 기록되지 않은 멜기세덱의 반차는 영원한 제사장을 예표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온 왕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신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로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브라함의 혈통 밖에서도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나의 하나님"이라고, 나만의 하나님처럼 표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천지의 주재이시고 지극히 높으신,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얻은 전리품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전리품을 모두 취하고 처분할 권리가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승리가 나의 힘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대적을 손에 붙이셨기 때문임을 알았기에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를 표합니다. 이 십일조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규정이나 의무이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어떤 규정 때문이 아니라, 전쟁에 승리케 하시고 축복하기 위해 나온 그에게 드리는 감사의 언어였습니다. 언젠가 십일조에 대해 다시 나누겠지만, 오늘 본문의 십일조는 의무나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승리케 하신 것에 대한 가장 정직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라고 말합니다. 자기 이익부터 챙기는 모습입니다. 자신을 구해 준 은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곧바로 거래를 제안하는 이 태도는 멜기세덱의 관대함과 대조적입니다. 결국 소돔 왕은, 뒤에서 보겠지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는 저주의 결과를 맞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실이나 들메끈이라도 네게 속한 것은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훗날 소돔 왕이 "내가 아브라함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부요함의 근원은 소돔이 아니라 오직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함께 싸운 젊은이들과 동맹자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몫은 인정합니다. 그는 지나치게 엄격한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를 지내며 세상이 손 내미는 것 중에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정체성과 감사의 근원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슬쩍 옮겨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멜기세덱은 성경 역사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그림자는 창세기를 넘어 시편 110편, 히브리서 5장과 7장, 그리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우리 주님은 레위 계열의 혈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왕이자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떡과 포도주를 들고 우리를 찾아오셨고,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우리를 위한 영원한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소돔 왕처럼 빈손으로 다가와 결국 우리 몫을 요구하는 세상의 소리와, 떡과 포도주를 들고 먼저 축복하시는 우리 왕의 음성을 분별하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내 삶의 모든 승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떡과 포도주를 들고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왕이며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이 내미는 빈손의 거래를 분별하게 하시고, 얻은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서 온 것임을 고백하는 정직한 하루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