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7.30

성문 앞에서, 나를 끌어들이신 손

창세기 19:1-11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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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창세기 19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성문 앞에서, 나를 끌어들이신 손"이라는 제목으로 새벽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문"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롯이 앉아 있던 성문(1절), 롯이 등 뒤로 닫은 문(6절), 폭도들이 부수려는 문(9절), 천사들이 롯을 끌어들이고 닫은 문(10절). 오늘 새벽 우리는 이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롯은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본문에 "마침 앉았다가"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계속 앉아 있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어쩌다 그날 거기 앉아 있던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성문은 그 시대의 시청이자 법정이자 시장 같은 장소였습니다. 롯은 소돔으로 이주해 와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돔 근처에 장막을 쳤고(창 13:12), 14장 12절에서는 소돔에 살게 되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소돔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앉게 됩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그가 나락의 길로 떨어집니다. 오래 쌓아 둔 자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첫째, 죄는 문을 부수려 합니다. 본문 4절에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라고 기록합니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소돔의 끝에서 끝까지 온 백성, 온 세대가 함께 모여 롯을 다그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하셨지만, 소돔에는 모든 남녀노소가 다 죄악을 범했고 악이 가득했습니다.

소돔의 죄는 무엇입니까? 5절에 "상관하리라"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야다"로, 집단 성폭력을 행하겠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16장은 소돔의 죄를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으며,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였다"라고 표현합니다. 배부름과 안일함이 먼저였고, 가증한 폭력은 그 열매였다는 것입니다. 죄가 자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풍요로움 → 교만함 → 무관심 → 폭력으로 성장합니다. 소돔은 어느 날 갑자기 괴물 같은 도시가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살고 너무 풍요했기 때문에 이웃이 보이지 않는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큰 죄가 아니라, 배부름 속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무감각함입니다. 배부름, 교만함, 무관심 같은 사소한 것에 무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라는 속담처럼, 작은 것을 경계하지 아니하고 무뎌지면 나중에 큰 죄로 성장합니다. 냉장고 문을 오래 열어 두면 경고음이 울리는데, 그 소리를 매일 듣는 사람은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소리가 멈춘 것이 아니라 내게 들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소돔의 문제는 죄가 커진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한 경고음이 그들에게 들리지 아니한 것입니다.

둘째, 사람의 문은 끝내 지켜지지 아니합니다. 6절에서 롯은 문 밖으로 나가 그 뒤로 문을 닫습니다. 자기 등 뒤에 문을 두고 자기 몸으로 폭도들을 막아섭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은 이 롯을 "의로운 롯"이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의로운 롯의 용기 있는 행동은 실패하고 맙니다. 7절에 롯이 "형제들아"라고 합니다. "이것을 절대 하면 안 된다"라고 강력하게 선언하고 제재해야 하는데, "형제들아"라고 하며 협상을 합니다. "절대 안 된다"가 아니라 "잠깐만 멈추어라"라는 완곡한 말로 표현합니다. 결국 롯은 단호하게 죄를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또 자기 딸을 내어 준다는 것으로 타협을 보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9절에서 롯은 사람들에게 밀쳐지고 문은 깨질 지경에 이릅니다.

가장 의로운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그 문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무리 의롭고, 아무리 권세가 있어도 이 문을 지키기에는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우리는 내 신앙이나 내 결단이나 내 가정을 내 힘으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롯의 모습을 보면, "나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라는 정직한 진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의 손이 우리를 문 안으로 이끕니까? 10절에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니라"라고 기록합니다. 롯은 자기 발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붙잡혀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8장 9절에서 노아가 비둘기를 방주 안으로 잡아들이는 장면, 창세기 7장 16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하며 하나님이 방주 문을 닫으신 장면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면 왜 롯이 건짐을 받았습니까? 본문 29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지켜 주시고 문 안으로 끌어들여 살게 하셨습니다. 롯은 문 밖에 나가 섰다가 밀려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도 밀려나지 않으셨습니다(히 13:12). 주님께서는 문 밖에서 끝까지 죽으심으로 우리를 그 문 안에 두시고 지키셨습니다. 롯은 자기 딸을 내어줌으로 사람들을 지키려 했지만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심으로, 그 아들을 기억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 있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 더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돔의 죄악을 보면서 손가락질해서는 안 됩니다. "저 소돔은 죄악 때문에 당연히 무너질 것이야"라고 혀를 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소돔의 교만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얻을 것은, 배부름 속에서 무뎌졌던 신앙의 감각을 다시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끌어들인 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문을 지키고 선 것이 아니라, 나를 그 문으로 끌어들인 손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소돔 같은 세상의 성문 앞에 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등 뒤의 문은 우리가 절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문 밖에서 다 이루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 문 안으로 끌어들이셨습니다. 그 손을 붙들고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에 여러 문이 있지만 그 문이 주는 교훈은 각각 다름을 압니다. 내 힘으로 성문 앞에 섰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문을 닫아 지키려 했지만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이 나를 그 문으로 이끄시고 지키신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손이 나를 지키셔서 안전한 그 문 안에 거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배부름 속에서 무뎌진 신앙의 감각을 다시 깨우십시오.
  • 2내 힘으로 가정과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진단하십시오.
  • 3소돔을 손가락질하는 순간 이미 그 교만을 배우는 것임을 기억하고, 나를 끌어들이신 손을 붙드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내 힘으로 성문 앞에 섰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문을 닫아 지키려 했지만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이 나를 그 문으로 이끄시고 나를 지키신 것을 이제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손이 나를 지키셔서 안전한 문 안에 거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