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32장 9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언약을 붙들고 드린 기도"라는 제목으로 새벽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소식을 듣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마중 나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20년 전 야곱이 도망쳤던 이유가 바로 그 형 때문이었습니다. 형이 야곱을 죽이기로 작정했기에 야곱은 그 손을 피해 도망쳐 왔던 것입니다.
야곱이 먼저 한 일은 계산이었습니다. 가축과 짐승을 두 떼로 나누고 "한 떼가 당하면 나머지는 살리자"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책입니다. 그런데 그 계산을 마친 다음에 야곱은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야곱의 첫 번째 긴 기도입니다. 세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서 시작했습니다. 9절을 보면 야곱의 기도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보여 줍니다. 자기 사정이나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서 출발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고 곧바로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셨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야곱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돌아가라 하신 분이 주님이시니, 이 길에서 벌어지는 일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약속을 붙드는 기도입니다.
여기 "은혜를 베풀리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되게 한다"라는 뜻이며, 말하는 이의 결심을 담는 형태로 쓰인 표현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라는 야곱의 기도는, 요청이라기보다 이미 하나님께서 "내가 은혜를 베풀어 주겠다"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전 벧엘의 그 밤에 들은 말씀을 하나도 잊지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기도를 시작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내 사정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한 구절로 먼저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내가 작아지는 자리입니다. 10절에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라고 고백합니다. "감당할 수 없다"는 "나는 작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에 견주면 저는 그저 작은 자입니다." 이 말을 누가 합니까?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나고, 장자권을 사들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의 재산을 불려서 나온 야곱이 합니다. 평생 자기 몫을 계산해 챙긴 사람이 "나는 작은 자입니다. 나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20년 전에는 내가 지팡이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두 떼가 되었나이다." 그런데 야곱은 그 두 떼를 자기 수완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과 진실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기도의 내용이 바로 야곱이 바뀌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핵심은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작은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함만이 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셋째, 정확하게 구하고 다시 약속으로 돌아옵니다. 야곱이 본론을 꺼냅니다. "내 형의 손, 곧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여기 "건져낸다"는 위험에서 낚아채듯 끌어내 달라는 말인데, 히브리 원문에는 이 단어가 문장 제일 앞에 옵니다. 다른 말보다 "건져 주십시오"라는 말이 먼저 터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두루뭉술하게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형의 이름을 부르고 두려운 이유까지 밝힙니다. 그런데 기도는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12절에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으로 돌아옵니다. 9절에서 약속으로 시작하고, 10절에서 자기를 낮추고, 11절에서 정확하게 구하고, 12절에서 다시 약속으로 기도의 문을 닫습니다. 두려움 한가운데 있지만 그 두려움을 약속이 앞뒤로 감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끝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움으로 끝나는 기도와 약속으로 끝나는 기도는, 그 기도를 마친 후에 일어나는 모습에서 분명 다릅니다.
이 기도를 드린 그날 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그리고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채 절뚝거리며 형에게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다만 그를 강하게 만드셔서가 아니라 그를 꺾어서 응답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또 다른 밤이 있습니다. 겟세마네입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남아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야곱은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고, 예수님께서는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응답되었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지 아니했습니다. 그분이 건져지지 않으셨기에 우리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오늘 새벽 우리가 더듬거리며 기도하는 자리에, 이미 우리를 위해 드려진 완전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깔려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든 것은 우리의 간절함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약속임을 기억합니다. 지팡이 하나로 건넜던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든지 그것을 내 손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은총이라 부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름조차 꺼내기 두려운 그 일을 주 앞에 우리가 내어놓습니다. 하나님, 건져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이 아니라 약속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