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8.26

돌려드린 복, 아직 가지 않은 길

창세기 33:5-20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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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창세기 33장 5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돌려드린 복, 아직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이 새벽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을 보면 400명을 데리고 오는 형 앞에 야곱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하는 말이 뜻밖입니다. 도망치지도 않고 뒤에 숨지도 않습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가족들보다 앞서 나아가 일곱 번 땅에 몸을 굽힙니다.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둘이 함께 웁니다. 밤새 기도했던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뀐 것은 야곱이 아니라 에서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강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형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응답하셨습니다.

첫째, 야곱은 복을 돌려주었습니다. 에서가 묻습니다.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어제까지 이 가족은 "한 떼가 당하면 나머지는 살리려고" 나누어 두었던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바꿔 말합니다. 사람이 바뀌면 그가 가진 것을 부르는 이름도 바뀝니다.

11절에 야곱이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8절까지는 계속 "선물"이라고 하는데, 11절에서는 "내 복을 받으소서"라는 의미의 단어를 씁니다. 20년 전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빼앗은 것이 바로 그 복이었습니다. 지금 야곱은 훔친 그 단어를 손에 들고 형 앞에 서 있습니다. 회개가 마음에서 끝나지 않고 재산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여기 "강권한다"는 예의상 한 번 권하는 것이 아니라 받을 때까지 밀어붙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꼭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야곱이 돌려준 것은 재산이지 언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그것을 가로챈 방식에 대해서는 갚을 것이 있었고, 야곱은 형 에서에게 그것을 갚았습니다. 훗날 삭개오도 그러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계산을 정확하게 해서 돌려줍니다.

본문 10절에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라고 기록합니다. 얍복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난 사람이, 자기를 죽이려던 형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풀린 것이 사람 앞에서도 풀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돌려줄 것이 무엇인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에서 손으로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그러나 아직 벧엘이 남아 있습니다.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동행을 제안합니다. 야곱은 사양하고 "세일로 가겠다"라고 말하고는 반대편인 숙곳으로 갑니다. "옛 버릇이 남았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언약의 땅은 세일이 아니니 옳은 분별이었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화해를 했다고 해서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14절을 보면 야곱이 숙곳으로 옮기며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겠다"라고 합니다. 평생 앞질러 가고 쫓기고 속이던 사람이 이제는 제일 느린 걸음에 속도를 맞추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때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17절부터 그곳에서 사건이 생깁니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집을 짓습니다. 20년 동안 장막에서 살던 사람이 이제 집을 짓고, 가축 우리간까지 지었습니다. 오래 생각하고 작정하고 지은 것입니다. 18절에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라고 기록합니다. 여기 "평안히 이르렀다"는 "온전하게 완성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기도했던 내용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은 그 조건을 글자 그대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야곱의 기도대로 다 이루셨으니, 이제는 누가 해야 할 차례입니까? 야곱이 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곳에 머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가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야곱은 세겜에 머물러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 밭을 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새로 받은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여기까지는 다 좋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곳은 벧엘이 아니라 세겜이었다는 것입니다. 분명 좋은 자리이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 야곱의 집안이 무너집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봅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이 그것을 막으십니다. 분명 좋은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해 두신 곳은 아시아가 아니라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야곱이 세겜에 머물러 제단을 쌓고 땅을 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은 좋은 행위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곳이 아니라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 하나님은 밀어 둔 서원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다만 벌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르러 오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야곱은 그가 훔친 복을 다 돌려놓았습니다. 훌륭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돌려준 그 복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은 남은 것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으셨고, 자기 복을 전부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야곱은 받은 복을 다 돌려주었고, 예수님은 그 복을 다 넘겨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화해의 자리에서 멈추지 마시고, 오늘 이 새벽 우리를 부르시는 곳이 평안한 곳이 아니라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벧엘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약속하신 것을 온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새벽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후회에서 멈추지 아니하고 손까지 내려가는 회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응답은 받고 서원은 밀어 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숙곳에서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벧엘로 올라갈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복을 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아니하고 복을 다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미안하다"는 말에서 멈추지 말고, 돌려줄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하십시오. 회개는 마음에서 손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 2응답은 받고 서원은 밀어 둔 것이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 3화해의 자리, 평안한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벧엘)으로 올라가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약속하신 것을 온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새벽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보게 하시고, 마음의 후회에서 멈추지 않고 손까지 내려가는 회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응답은 받고 서원은 밀어 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숙곳에서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벧엘로 올라갈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복을 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복을 다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