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34장 1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거룩한 표징이 무기가 될 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34장에는 하나님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31절 내내 하나님이 말씀하지도, 나타나지도 않으십니다. 기도도 없고 제단도 없습니다. 앞의 33장 마지막에는 야곱이 제단을 쌓았고, 내일 보게 될 35장 첫 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이 34장에만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가 멈춰 서니 모두가 흔들립니다. 야곱이 가기로 한 곳은 벧엘이었습니다. 20년 전 돌베개를 베고 하나님을 만나 서원했던 자리가 벧엘입니다. 그러나 그는 벧엘로 가지 아니하고 세겜에서 멈춥니다. 그곳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장막을 칩니다. "잠깐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멈춘 자리에서 그의 딸 디나가 밖에 나가고, 그 땅의 추장 아들이 그를 봅니다. 3절에 "연연하며"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창세기 2장에서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라고 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7절에서 디나가 밖에 나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는데, 이 일을 원문은 "네발라"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한 사람이 당한 것이 아니라 온 집이 무너지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지 아니하고 잠깐 머물러야 할 곳이라 여긴 그곳에서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한 딸의 사건만이 아니라 가정이 무너질 수 있는 큰 사건입니다.
둘째, 거룩한 표징이 무기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 소식을 들었지만 잠잠했다고 5절에 기록합니다. 아버지가 침묵한 그 빈자리를 야곱의 아들들이 채웁니다. 그들은 계획을 짜고 함정을 만듭니다. 13절에 "그들이 속여 대답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 "속이다"라는 말은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이 에서에게 한 말,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에서 야곱을 가리켜 쓰였던 그 단어입니다. 그 단어가 이제 야곱의 아들들에게 쓰입니다. 훗날 이 아들들은 요셉의 옷에 짐승 피를 묻혀 아버지를 또 속입니다. 야곱은 평생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둡니다.
더 잔인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무기로 삼았는가입니다. 할례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몸에 새기는 언약의 표징인데, 그들은 그것을 함정으로 사용합니다. 거룩한 표징이 칼자루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행동을 결코 용인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임종하는 자리에서 그 두 아들에게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창 49:7)라고 말합니다. 명분이 옳다고 해서 수단까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셋째,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채로 34장이 끝납니다. 본문은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30절에서 야곱이 드디어 길게 말합니다. 딸의 일에는 한마디도 하지 아니했던 그가 대답하는데, 그 말 속에 "나"라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딸이 당한 일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고 오직 "나"뿐입니다. 그러자 아들들이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라고 되묻는 것으로 34장이 끝납니다. 야곱도 대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도 대답하지 아니하십니다. 물음표 하나만으로 창세기 34장이 마칩니다.
수술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가족들이 병원 복도에서 결과를 기다려 본 분이 계실 것입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아무 소식도 없는 그 시간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34장 같은 자리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직 대답을 받지 못한 일들이 우리 인생 가운데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4장에서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입을 여신 것을 봅니다. 성경은 34장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바로 35장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이 회개했다는 말도, 아들들이 뉘우쳤다는 말도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할 말을 다하고도 대답을 내지 못한 그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입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첫마디는 "너희가 이런 죄를 범했으니 심판을 받으라"가 아니라 "올라오라"였습니다.
저주받은 그 아들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레위는 정말 흩어졌고 자기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흩어짐을 이렇게 바꾸어 주셨습니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신 33:10). 칼 때문에 흩어진 그 지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주를 지우지 아니하시고 그 자리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칼을 뽑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올 때 베드로가 칼을 뽑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므온과 레위 지파는 누이를 위하여 칼을 뽑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칼을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 하나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응답 없이 끝나 버린 그 자리에서, 그 가운데 하나를 정하고 그것을 붙들고 오늘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내가 드린 많은 기도 가운데 응답되지 아니한 것이 있다면, 오늘 그중 하나를 정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벧엘로 올라가면, 분명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침묵하시는 것 같은 자리에서도 먼저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대답 없이 닫혀 버린 우리의 한 자리를 정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자리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 손에 들린 칼을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칼을 받으신 예수님만 붙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응답되지 못한 한 가지를 놓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