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장에는 하나님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31절 내내 하나님이 말씀하지도 나타나지도 않으시고, 기도도 제단도 없습니다. 앞의 33장 끝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았고, 다음 35장 첫 절에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는데, 그 사이 34장에만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야곱이 가기로 한 곳은 벧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겜에서 멈춰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장막을 칩니다. "잠깐이면 되겠지" 하며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그 멈춘 자리에서 딸 디나가 밖에 나가고, 그 땅 추장의 아들에게 욕을 당합니다. 본문 7절은 이 일을 "이스라엘에게 행하지 못할 일" — 한 사람이 당한 것이 아니라 온 집이 무너지는 일이라는 표현으로 씁니다.
야곱은 소식을 듣고 "잠잠하였고"(34:5), 그 빈자리를 아들들이 채웁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 속여 대답하였으니"(34:13) — 여기 '속이다'는 27장에서 이삭이 야곱을 두고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할 때 쓰인 그 단어입니다. 야곱은 평생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둡니다. 더 잔인한 것은 그들이 할례 —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표징 — 를 함정으로 삼은 것입니다. 거룩한 표가 칼자루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행동을 결코 용인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임종의 자리에서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합니다(49:5-7). 명분이 옳다고 수단까지 옳은 것은 아닙니다.
30절에서 야곱이 길게 말하는데 "나"가 여섯 번 나오고, 딸이 당한 일에 대한 말은 없습니다. 아들들이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34:31) 되묻는 것으로 34장이 물음표 하나로 끝납니다. 수술실 밖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아무 소식도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34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곱이 회개했다는 말도, 아들들이 뉘우쳤다는 말도 없는데, 35:1에서 하나님이 먼저 입을 여십니다. 그 첫마디는 "심판을 받아라"가 아니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였습니다. 저주받은 레위 지파는 흩어졌으나, 하나님은 그 흩어짐을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신 33:10)로 뒤집으셨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를 위해 칼을 뽑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칼을 칼집에 꽂으라 하시고(요 18:11) 우리를 위해 칼을 받으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