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는 야곱이 세겜 땅에 장막을 치는 자리에서 멈추었습니다. "아직 벧엘이 아닙니다"라고 했던 그 문장이 닫히는 자리가 오늘 본문입니다. 잊은 것이 아니라 미루어 둔 약속 — 야곱이 딱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서원했지만, 가나안에 돌아온 뒤로도 여러 해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세겜에 땅을 사고 제단까지 쌓았습니다 — 제단은 쌓았는데 그곳은 벧엘이 아니었습니다.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니라 약속한 자리로 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 사이 집안이 무너지고 "나와 내 집이 도륙을 당하리라"(34:30)는 고백이 나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35:1) 말씀하십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네가 서원한 것을 지켜라"라고 의무를 상기시키지 않으시고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그때의 처지를 기억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도망치던 그 밤, 내가 너를 찾아갔던 자리로 오라."
야곱은 곧바로 짐을 싸지 않고 먼저 집안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35:2) 합니다. 제단을 쌓던 그 집에 이방 신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데리고 다니다 보니 더는 낯설지 않게 된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내놓은 것 중에는 귀고리도 있었는데(35:4), 당시 이는 악한 것을 쫓아 준다고 믿던 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있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하는 것들 —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야곱은 그것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 다시 주울 수 없는 곳에 두었습니다.
드디어 벧엘에 도착한 야곱은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엘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35:7). 젊은 날에는 장소의 이름을 불렀고, 늙은 날에는 그 장소에 계신 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눈이 집에서 그 집에 계신 분에게로 옮겨진 것입니다. 예배에서 얻는 위로는 벧엘(장소)이 아니라 엘벧엘(그 집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 이름(이스라엘)을 확정해 주시고(35:10) — 믿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은 새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엘 샤다이)"(35:11) 하시며 땅과 후손의 약속을 다시 주십니다. 이것은 야곱이 우상을 묻어서 받은 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홀로 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한 일은 묻고, 갈아입고, 올라간 것입니다. 신약이 복음을 설명할 때 바로 이 방법을 씁니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골 2:12),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야곱은 자기 손으로 우상을 묻었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예수님이 대신 묻히셨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야 했지만, 우리는 올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 엘벧엘 되신 예수님이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요 1:14).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