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37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을 통해 "꿈은 꾸었는데 구덩이는 꿈꾸지 못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새벽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창세기 37장에는 한 소년이 등장합니다. 요셉인데,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좋은 옷을 입고 꿈까지 꾸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37장에서 옷이 벗겨진 채 구덩이에 던져지고, 은 스무 개에 팔려 애굽으로 끌려갑니다.
젊은 나이, 20살 정도에 꾸었던 꿈이 지금 그대로 이루어졌고 그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직장도, 살림도, 아이 키우는 것도, 우리는 꿈꾸었던 것을 다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가 애초에 꿈을 잘못 꾼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바꾸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그 답을 37장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꿈을 주시는 분과 그 꿈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에 "채색 옷을 입혔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이 채색 옷은 손목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가리키는데, 그 시절 목자들이 입던 옷은 소매가 없고 무릎까지 오는 작업복이었습니다. 요셉이 입은 옷은 일하는 사람의 옷이 아니라 일을 시키는 사람의 옷이었습니다. 야곱은 사랑을 옷으로 표현했는데, 그 옷이 형들에게는 매일 아침 눈으로 확인하는 표지판이 되었습니다. 4절은 "형들이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형제간에 인사조차 편히 건네지 못하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차별하면 아이들은 곧바로 알아차립니다. 자녀를 키워 본 경험에 의하면, 부모가 조금만 차별을 두어도 아이들은 금방 눈치를 채고, 그 사랑을 되찾으려고 떼를 쓰거나 응석을 부립니다. 그 차별은 반드시 이후에 집안에 큰 다툼이 됩니다. 11절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라고 대조적으로 말씀합니다. "시기한다"는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는 감정 상태이고, "간직해 두었다"는 소중한 것을 지키듯 마음에 두고 곱씹는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꿈 이야기를 같은 자리에서 들었는데, 한쪽은 끓어올랐고 한쪽은 마음에 새겼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우리 안에서 갈리는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기는 남의 일에 내가 반응하는 것이지만, 책임은 남의 일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 꿈으로 가는 길에 구덩이를 지나갑니다. 23절에서 형들은 요셉의 옷부터 벗깁니다. 사랑받았다는 증거를 먼저 빼앗아 버리는 행동입니다. 24절에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물이 없다는 말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마시고 견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끝나지도 아니하는 장소가 구덩이입니다. 이어서 28절에서 요셉은 은 20에 팔립니다. 훗날 율법이 정한, 다섯 살부터 20살까지 남자의 몸값이 정확히 은 20세겔입니다(레 27:5). 형들은 동생을 그때 시세대로 넘긴 것입니다.
요셉이 회개할 죄를 지어서 구덩이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이 잘 있는지 보러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착하게 살면 구덩이를 면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정직하게, 진실하게 산다고 해서 우리에게 보이는 그 구덩이를 면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20절에 형들이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라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정말로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자기들이 그 앞에 엎드리는 방식으로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그들의 조롱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가 높아지는 꿈은 꾸었어도 갇히는 꿈은 꾸지 아니했습니다. 형들은 그 꿈을 무너뜨리려고 움직였는데, 바로 그 움직임이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길은 요셉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 형들이 낸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기자는 요셉의 이 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7-19). 팔려간 것이 아니라 보내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형들은 팔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내셨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뒤에, 옷이 벗겨지고 은에 팔린 또 다른 한 분이 계십니다. 요셉은 은 20에, 예수님은 은 30에 팔리셨습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나왔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다시 나오셨습니다. 요셉은 한 가족을 살렸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구덩이 속에 계신 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구덩이를 비켜 가며 일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구덩이를 지나가시며 일하고 계십니다. 그 길은 이미 예수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구덩이를 만난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 길을 이미 지나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꾼 꿈과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달라서 마음이 무거웠던 것을 고백합니다. 남에게 하신 일 앞에서 끓어오르지 않게 하시고, 야곱처럼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물 없는 구덩이 같은 시간에도 성령으로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놓지 아니하시는 줄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수님을 따라 오늘 하루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팔려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