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36장 1절부터 8절과 31절부터 43절까지의 내용을 통해 "에서에게도 산을 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새벽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36장은 이름들의 목록입니다. 43절까지 내내 낯선 이름들이 이어집니다. 새벽에 이렇게 이름만 읽으면 힘들지만, 이 이름들 가운데서 몇 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을 보면 장자권을 판 에서의 이름과 족보가 등장하고, 이 사람의 후손이 왕이 되는 것을 봅니다. 반대로 축복을 받은 야곱의 자손은 여전히 천막에 살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공평한가를 이 새벽에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에서가 떠난 자리도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입니다. 2절에 에서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습니다. 그냥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종에게 맹세까지 시키며 "가나안 사람의 딸 중에서 며느리를 얻지 말라"라고 했고, 이삭도 야곱을 불러 똑같이 당부했습니다(창 28:1-2). 두 대에 걸쳐 결혼과 후손에 대해 그어 놓은 선, 규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선을 스스로 넘어갔습니다. 6절에서는 가축과 재물을 다 이끌고 아예 가나안 땅을 떠나 버립니다. 좋은 땅을 골라 소돔 쪽으로 내려간 롯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아무도 에서를 쫓아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야곱도, 이삭도 그를 밀어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자기 발로 걸어 나갔습니다. 언약 밖으로 나가는 길은 대개 이렇습니다. 어느 날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씩 선을 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멀리 와 있는 것입니다.
8절에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주하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이사 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산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땅은 발바닥으로 밟을 만큼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신 2:5). 에서가 가나안 땅을 떠나 세일산에 머문 것을 성경은 "기업"이라고 기록합니다. 에서가 힘으로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튕겨 나간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걸어 나간 그 걸음까지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고, 그가 자리 잡은 곳도 하나님이 정해 두신 자리입니다. 사람이 제 뜻대로 걸어도 하나님의 지도 밖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생각해 봅시다. 믿지 않는 이웃이 잘되는 것을 볼 때 시기가 먼저 올라오거든,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저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둘째, 손에 가진 것의 크기로 하나님의 사랑을 재지 마십시오. 31절에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이 이러하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하나도 없을 때에 에돔에는 이미 왕이 여덟 명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야곱의 후손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고, 흉년을 만났고, 애굽으로 내려가 끝내 벽돌을 굽는 종이 되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혈통과 명예에서는 언약의 자녀들이 뒤처지고, 언약 밖에 있는 이들이 앞서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큰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때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여기서 끝나지 아니합니다. 에돔이 누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신학에서 이것을 "일반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언약 밖에 있어도 해가 뜨고 비가 내리고 재산이 불어나는 것, 하나님이 세상 모두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에서에게 부어진 이 일반 은총으로 그는 왕국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일반 은총을 받은 사람의 복이 이 정도라면, 특별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주신 복은 얼마나 더 크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창세기 36장은 우리를 부러움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부러움을 지나 더 큰 소망으로, 더 큰 축복으로, 더 큰 은혜로 데려가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계산을 바꾸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셨습니까?"를 세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를 세는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합니다. 앞의 계산은 늘 남과 비교하게 하고, 뒤의 계산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고백합니다. "작은 것을 주신 분이니 큰 것도 주시리라"가 아니라, "가장 큰 것을 이미 주셨으니 나머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도 산을 허락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세일산을 주신 손과 아들을 내어 주신 손이 같은 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 손이 조금 비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적다는 증거는 되지 않음을 꼭 기억하십시오. 에돔의 왕들은 이름만 남았고 결국 에돔은 다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천막에 살던 야곱의 후손 가운데서 참된 왕이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세일산도 왕궁도 갖지 아니하시고 대신 우리를 얻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 손에 쥔 것을 세지 마시고, 이미 받은 그 아들을 세시기 바랍니다. 그 계산이 맞으면 나머지는 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름만 가득한 장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언약 밖으로 걸어 나간 에서에게도 산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다는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의 형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주신 것을 세는 자리에서 약속하신 것을 세는 자리로 옮겨 앉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