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9.07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41:37-57 · 2026.09.0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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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41장 1~57절 · 새벽묵상 · 2026-09-07

오늘 창세기 41장 37절부터 5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첫 줄은 "만 이 년 후에" 이렇게 기록하면서 창세기 41장이 시작합니다. 기다려 본 사람들은 아실 것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고통이 아니라, 이 시간이 아무 데로도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그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신 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하루아침에 감옥 문이 열렸지만 열세 해가 걸렸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꿈을 꿉니다. 살진 일곱 암소를 파리한 일곱 암소가 먹어 버리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마른 일곱 이삭이 삼켜 버립니다. 애굽에서 암소와 이삭은 땅의 풍요를 나타냈으나, 자기 나라가 삼켜지는 꿈이었습니다. 8절에 보면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라고 표현합니다. 이 '번민하다'라는 말은 속이 쿵쿵 울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당시 애굽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이 다 모였지만 아무도 이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꺼내시려고 감옥의 열쇠를 만지지 아니하셨습니다. 왕의 잠자리를 만지신 것입니다. 우리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야 형편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오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절에 보면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라고 기록합니다. 열세 해를 끌어온 일이 한나절 만에 순식간에 해결되고 맙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때 요셉은 "제가 꿈 해석을 잘하는 편입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16절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감옥에서 들었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한 말과 같은 말입니다. 종으로도, 죄수로도, 왕 앞에서도 그 첫마디는 바뀌지 아니했습니다.

요셉은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 흉년을 풀어 주고 한마디를 더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32절). 38절에 보면 바로가 요셉을 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바로가 본 것은 꿈 해몽을 잘하는 솜씨가 아니라, 이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리라"라고 선포합니다. 열일곱에 구덩이에 빠졌으나 열세 해가 걸린 그 기간을 지나 요셉이 총리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은 한 사람에게 맡기신 일을 위하여 임했지만, 오늘은 그 영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두 번째는, 고난의 땅에 두 아들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풍년이 시작되고 곡식을 쌓는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51절에 보면 장남의 이름은 므낫세이고,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잊게 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을 다 잊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 형들을 만났을 때 그는 소리 내어 웁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너무 커서 지난 아픔을 덮고도 남더라는 고백입니다.

52절에 보면 차남의 이름은 에브라임이고,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열매를 맺다'라는 말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수고한 땅에서"라는 표현입니다. 그 땅은 애굽 땅이었고, 팔려 온 땅이었고, 모함당한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 기도가 잘못된 기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그 자리에서 꺼내시는 대신에, 그 자리를 열매 맺는 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요셉의 애굽은 끝내 애굽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장소를 열매를 맺는 애굽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흉년이 오자 바로는 굶주린 백성에게 말합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55절). 각국의 백성들이 몰려들었고, 그 줄 어딘가에는 곧 요셉의 형들이 서게 됩니다. 요셉이 열매를 맺은 것은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언약을 받은 집안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에는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라는 말이 한 번 더 나옵니다. 신약에서 가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한복음 2장 5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 장면은 완전히 다릅니다. 요셉의 창고는 바닥이 나고, 그 곡식을 먹은 사람도 이듬해에는 또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한복음 6장 35절). 창고를 여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셉은 자기가 수고한 땅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라고 하는 땅에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열매가 오늘 여기 앉아 있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그 수고한 땅도 하나님께는 마지막 자리가 아니라,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땅, 열매를 내시는 장소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새벽에 우리를 불러 주셔서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잊힌 세월을 없던 일로 지우지 않으시고 그 땅에서 열매 맺게 하신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미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여 주시고, 눌려 지내는 동안에도 우리의 첫마디가 항상 아버지의 이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제는 그 자리에서 열매 맺게 해 달라고 우리의 기도를 바꾸어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그 수고한 자리에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더욱 알게 하여 주시고, 창고를 여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내어 주신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내가 손댈 수 없는 일 하나를 적고 그 위에 "아버지께서 이미 일하고 계십니다"라고 써 둡니다. 하나님은 감옥 열쇠가 아니라 왕의 잠자리를 만지시는 분입니다.
  • 2오늘 하루 내 첫마디를 지켜봅니다. 좋은 기회 앞에서 한 번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로 바꾸어 말해 봅니다.
  • 3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 옆에 한 줄을 더 붙입니다. "이 자리에서 열매 맺게 해 주십시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새벽에 저희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잊힌 세월을 없던 일로 지우지 않으시고 바로 그 땅에서 열매 맺게 하신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미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시고, 눌려 지내는 동안에도 저희의 첫마디가 아버지의 이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 옆에, 이 자리에서 열매 맺게 해 달라는 기도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오늘 저희가 서 있는 그 수고한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고를 여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 주신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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