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2026.08.16

닫힌 하늘 앞에서

이사야 64:1-9 · 에스겔 1:1-3, 26-28 · 하늘을 열면 땅이 열린다 (2부)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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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야 64장 1절부터 9절, 에스겔 1장 1절부터 3절과 26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닫힌 하늘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늘을 열면 땅이 열린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벧엘에서 야곱이 본 하늘을 함께 보았습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치던 사람이 돌을 베고 잠든 그 광야에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정반대의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하늘이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 같고, 완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1절)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이 언제 이런 기도를 드립니까?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닙니다. 계신 줄 아는데 지금 여기서 느껴지지 않을 때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믿음이 없어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믿음은 있는데 응답이 없을 때 나오는 기도입니다. 오늘 이 닫힌 하늘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늘이 닫혀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1절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에서 "가르고"라는 말은 "찢는다"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이 단어를, 사람이 슬픔이나 충격을 이기지 못할 때 자기 옷을 찢는 장면으로 묘사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보았을 때 옷을 찢었고,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장군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욕할 때 옷을 찢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니 이사야의 기도는 쉽게 말하면 "하나님, 문 조금만 열어 주십시오"가 아니라 "저 하늘을 북 찢어서라도 내려와 주십시오"라는 표현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기도했을까요? 11절에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곳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예배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문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하늘이 닫힌 이유를 7절에서 찾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음이니이다." 이사야는 하늘이 닫힌 것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변하셨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부르지 않았다, 우리가 붙잡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하늘이 닫힌 것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막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6절에 더 놀라운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여기서 "의"는 나쁜 짓이 아니라 우리가 "잘했다"고 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봉사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이렇게 헌금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이렇게 많은 것을 참고 기다리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런데 이사야는 그 최선의 것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 같다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자기들의 의로 하늘을 열어 보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셔야 합니다"라는 계산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가 이만큼 봉사했는데, 헌금했는데, 수고했는데 응답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응답이 없을 때 대개 둘 중 하나를 택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고, 하나는 더 열심히 움직여 하늘 문을 열어 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 둘 다 하지 아니합니다. 8절에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여기 "그러나"라는 한 단어가 오늘 우리 기도의 내용입니다. 성전은 불타 버렸고 나라는 망했고 하나님의 응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상황이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않을 때 부를 이름 하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렇게 고백한 이사야의 기도 내용이 바뀝니다. 앞에서는 "하늘을 찢고 내려오소서" 하며 상황을 바꿔 달라고 기도했지만, 8절에서는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나를 빚어 주소서"로 바뀝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의 모습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닫힌 하늘 앞에서 "상황을 바꿔 주소서, 환경을 바꿔 주소서"가 아니라 "나를 빚어 주소서"로 기도가 바뀌어야 할 줄 믿습니다.

둘째,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에스겔 1장 1-3절을 보면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라." 장소가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벨론의 그발 강가, 포로로 잡혀간 그곳입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하늘을 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에스겔이 기도했다는 말도, 금식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냥 하늘이 열려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에스겔은 제사장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다면 제사를 집전했을 사람인데, 그 해에 바벨론의 포로 수용소, 그발 강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반복적으로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지난주 벧엘도 똑같았습니다. 야곱은 성전에서 하늘을 본 것이 아니라 도망치다 지쳐 쓰러진 광야에서 하늘 문을 보았습니다. 에스겔도 성전이 아니라 이방 땅 포로 생활 한복판에서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만 있다고 생각하여, 성전을 잃으면 하나님을 잃은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성전을 잃어버려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성전은 끊어졌지만 하나님은 끊어지지 아니하셨다고 에스겔을 통해 말씀합니다.

에스겔 1장 26-28절에는 "같고", "모양", "형상"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에스겔이 본 것은 인간의 언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모습이었고,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의 무게 앞에서 에스겔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우리도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취할 수 있는 것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마침내 하늘이 찢어졌습니다. 마가복음 1장 10절에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곧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사야가 "하늘을 찢고 내려오소서"라고 부르짖던 그 기도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여기 "갈라짐"이 바로 "찢는다"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전체에서 이 단어가 또 한 곳에 쓰이는데, 마가복음 15장 38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입니다. 어디에서 찢어졌습니까?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에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처음에 하늘이 찢어지고, 마지막에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 찢어진 순간에 하늘에서 큰 선언이 나옵니다. 세례 때에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는 음성이, 십자가 앞에서는 백부장의 입을 통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성전 휘장은 지성소를 막고 있던 커튼입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피를 들고서만 통과할 수 있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쳐진 마지막 장벽이었습니다. 그것이 찢어졌습니다.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 사람이 찢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이사야는 하늘을 찢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찢으신 것은 하늘만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의 몸도 찢으셨습니다. 하늘이 찢어지고, 휘장이 찢어지고, 그분의 살이 찢어졌습니다. 이 세 번의 찢어짐 위에 오늘 우리가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자리는 이사야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사야는 닫힌 하늘 앞에서 열어 달라고 기도했지만, 우리는 이미 열린 하늘 아래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하늘이 닫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열린 문을 두고도 닫힌 듯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였다"라고, 그리고 10절에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가 상상하지 못한 것들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 찢어지고 휘장이 찢어짐으로 성령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에스겔의 하늘은 형편이 좋아졌을 때 열린 것이 아니라 인생이 가장 어긋난 자리에서 열려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평안하고 평탄한 삶 속에서가 아니라 어긋난 순간, 힘든 순간에 하늘이 열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도의 방향을 바꾸십시오. 이사야는 "하늘을 찢어 주소서"에서 "주는 토기장이시니 나를 빚어 주소서"로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상황을 바꿔 달라는 기도에서 나를 빚어 달라는 기도로. 마지막으로, 이미 열린 문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히브리서는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격을 갖춘 다음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문은 우리가 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찢기심을 통해 열린 문입니다. 이 한 주간 그 담력으로 열린 하늘 문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이 닫힌 것 같아 서러웠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부르짖어도 대답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식었던 시간들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발 강가 포로된 자에게 하늘을 여신 하나님이시며, 아들의 몸을 찢어 마지막 휘장까지 걷어내신 아버지이심을 고백합니다. 상황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를 넘어 주님의 손에 빚어지기를 구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열린 그 길을 오늘 담대히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하늘은 형편이 좋아질 때가 아니라 인생이 가장 어긋난 자리에서 열립니다.
  • 2기도의 방향을 "상황을 바꿔 주소서"에서 "나를 빚어 주소서"로 바꾸십시오.
  • 3자격을 갖춘 다음이 아니라 이 모습 그대로, 이미 열린 문으로 담력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기도

아버지 하나님, 하늘이 닫힌 것 같아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식었던 시간들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발 강가와 포로된 자에게 하늘을 여신 하나님이시며, 아들의 몸을 찢어 마지막 휘장까지 걷어내신 아버지이심을 고백합니다. 상황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를 넘어 주의 손에 빚어지기를 구하게 하시고, 이미 열린 길을 오늘 담대하게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