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는 벧엘에서 야곱이 본 열린 하늘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정반대의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 하늘이 닫혀 있습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사 64:1).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계신 줄 아는데 지금 느껴지지 않을 때 나옵니다 —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응답이 없을 때 나오는 기도입니다.
"가르고"(사 64:1)는 "찢는다"는 뜻으로, 슬픔이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옷을 찢는 장면에 쓰입니다. 이사야의 기도는 "문 좀 열어 주십시오"가 아니라 "저 하늘을 북 찢어서라도 내려와 주십시오"입니다. 성전이 불탔고(64:11) 나아갈 문 자체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하늘이 닫힌 이유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64:7) — 우리 쪽에서 막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4:6) — 여기 '의'는 나쁜 짓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 봉사했는데, 헌금했는데, 수고했는데"라고 내놓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 하늘을 열어 보려는 계산입니다.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대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더 열심히 움직이는데, 이사야는 둘 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64:8). 이 "그러나" 한 단어가 신자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하늘을 찢고 내려오소서"에서 "나를 빚어 주소서"로 바뀝니다.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겔 1:1). 장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벨론의 그발 강가, 포로로 잡혀간 자리입니다. 에스겔이 기도했다는 말도, 금식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 누군가가 하늘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성전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늘을 보았듯이, 에스겔도 이방 땅 포로 생활 한복판에서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지성소에만 있다고 여겼고, 성전을 잃으면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끊어져도 하나님은 끊어지지 않으십니다. 에스겔은 그 영광의 무게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1:28).
"곧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막 1:10) — 이사야가 부르짖던 그 기도가 예수님의 세례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 "갈라짐"이 바로 "찢는다"는 단어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이 단어가 쓰인 또 한 곳은 15:38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입니다 — 십자가에서. 처음에 하늘이 찢어지고, 마지막에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마지막 장벽이었고,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 사람이 찢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이사야는 하늘을 찢어 달라 구했는데, 하나님은 하늘만이 아니라 아들의 몸도 찢으셨습니다. 하늘이 찢어지고, 휘장이 찢어지고, 그분의 살이 찢어졌습니다 — 이 세 번의 찢어짐 위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우리의 자리는 이사야의 자리(닫힌 하늘 앞)가 아니라 이미 열린 하늘 아래입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