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2026.08.30

하늘이 갈라지던 날

마태복음 3:13-17 · 하늘을 열면 땅이 열린다 (4부) · 2026.08.30
▶ 영상과 함께 보기

우리는 지난 3주 동안 하늘 아래 서 있었습니다. 첫째 주는 야곱이 도망치던 밤 돌베개를 베고 누워 하늘 문을 보았고, 둘째 주에는 이사야가 "하늘을 찢고 내려오소서"라고 부르짖었고 에스겔은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주에는 말라기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입을 여시고 하늘 문을 열겠다고 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서 마지막 장이 끝나고 성경이 조용합니다. 얼마나 조용하냐면 400년 동안 침묵하십니다. 400년은 감이 잘 안 오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입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그 긴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침묵하셨지만 가만히 계시지는 아니하셨습니다.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도 없었습니다. 성전은 있었고 제사도 있었지만 하늘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상태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남아 있는데 응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기도는 하는데 메아리처럼 들려오기만 하고, 예배는 빠지지 않는데 하나님이 나에게만 조용하신 것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400년의 침묵을 깨고 드디어 하늘이 열리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첫째, 하늘은 우리가 열어 본 적이 없습니다. 13절에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시니"라고 기록합니다. 말라기 3장 1절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라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400년이 지나 사자가 등장해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아니하셨고, 다만 400년 동안 침묵하셨을 뿐입니다.

그럼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헬라어가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가 되게 하셨고, 로마 제국이 등장해 도로를 닦았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그 도로는 앞으로 복음이 훨씬 빨리 전파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조용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그때에도, 예배를 드려도 응답이 없어 보이는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지금도 준비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성전이 아니라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격식이 갖추어진 자리가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내려오십니다. 요한의 세례 소문이 나서 군인도, 낮은 신분의 사람도, 여러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 줄 가운데 계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요단강까지는 약 100킬로미터, 걸어서 며칠이 걸리는 길입니다. 지형적으로 요단강은 지중해 해수면보다 300미터 낮은 저지대입니다. 그곳까지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줄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하며 앉아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친히 찾아가셨습니다. 30년을 기다렸다가 처음으로 행동하신 것이 바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것입니다.

줄 뒤에 서 있는 예수님을 보고 14절에서 요한이 극구 사양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것은 한 번만 거절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류한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 입으로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한 사람입니다. 그 신발끈도 못 풀겠다는 분이 지금 자기 앞에 서서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 반응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죄를 회개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400년 동안 하늘이 닫혀 있는 동안 많은 사람이 하늘 문을 열려고 노력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광야에 나가 회개하며 물에 잠겼습니다. 그럼에도 하늘이 열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에 줄 선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아무도 하늘을 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늘이 열립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회개한다고 해서 하늘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혔다고 느끼면 우리는 더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금을 더 드리고 죄를 더 세게 뉘우칩니다. 그것이 헛되거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하늘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은 아래에서 망치로 두드리고 창으로 찔러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에서 "의"라는 말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구원의 계획을 뜻합니다. "너는 너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다." 요한이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구멍을 내는 것이 됩니다. 그 계획은 계속 이루어지고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니, 너는 너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온전히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자리입니다. 요단강은 죄인들이 와서 세례를 받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자백할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 중에 서서 세례를 받으려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시작하신 그 일을 십자가에서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끄러운 줄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 낄 자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바로 그 줄에 예수님께서 서 계시고, 우리를 그 부끄러운 자리에서 주님의 자리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보다 높은 곳에 계시다는 데 있지 않고, 우리보다 낮은 곳까지 내려와 계시다는 데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록합니다. 요한은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칩니다. 어린양은 제단으로 끌려갈 짐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을 스스로 계산하는 습관을 버리십시오. 그 자격은 이미 요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올라오십니다. 그때 16절에 "하늘이 열리고"라고 기록합니다. 이 "열리고"는 수동형입니다. 누가 열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하늘을 여셨다고 말씀합니다. 400년 동안 갇혀 있던 하늘이 비로소 열렸습니다. 우리 같으면 세례를 받고 물에 잠기면 그동안 지은 죄를 곰곰이 생각하며 천천히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곧 올라오셨습니다. 자백할 죄가 하나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마가복음 1장은 이 "하늘이 열린다"를 "하늘이 찢어졌다"라고 표현합니다. 한번 찢어진 이 하늘은 다시 닫히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열린 하늘 아래 서 있습니다. 하늘이 열릴 때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 찢어진 휘장이 다시 닫혔습니까? 닫히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열어 놓으셨기에, 그 누구도 다시 닫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너 다 받았으니까" 하고 닫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계속 열려 있습니다. 단지 우리 기분이 하늘이 닫힌 것처럼 느끼는 것뿐입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세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장면에 함께하십니다. 17절의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앞부분 "내 사랑하는 아들"은 시편 2편에서 왕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 하신 표현이고, 뒷부분 "내 기뻐하는 자"는 이사야 42장에서 고난받는 종을 부르실 때 쓰신 표현입니다. 왕과 종을 한 문장에 붙여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왕으로 가시는 분인데,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음성이 언제 들렸는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설교도 안 하셨고, 병자도 안 고치셨고, 제자도 안 부르셨습니다. 사역의 성과가 하나도 없는 시점에 하나님께서 이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어야 인정받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도 "봉사를 더해야, 기도를 더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계산합니다. 그런데 요단강에서는 예수님께서 일하기 전에 "사랑한다"라는 말씀이 먼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실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실적으로 기뻐하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은 관계를 더 기뻐하십니다. 후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성과로 잘 보이려고 번제도 드리고 제사도 꼬박꼬박 드리고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3장에서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관계의 선언을 받으신 예수님께, 4장에서 바로 사탄이 광야에서 시험합니다. 사탄이 던지는 첫 문장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선언을 받으셨기에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도 "너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이렇게 했어?" 하며 정체성을 흔듭니다. 우리가 연약해져 "내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가" 하며 정체성이 흔들리면 계속 시험에 빠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해서 결과를 내려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닫힌 하늘 아래 서 있었는데, 그 하늘이 비로소 열렸습니다. 요단강에서 갈라진 하늘은 십자가에서 한 번 더 확인됩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시작도 위에서, 마침도 위에서였습니다. 오늘 요단강에서 들린 그 음성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 1장 6절에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신 그분 안에 우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하신 그 음성이, 예수님 안에 있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해 하늘을 열어 두신 것은, 그 예수님 안에 있는 나에게도 하늘을 열어 주신 것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늘이 닫혀 있습니까, 열려 있습니까? 열려 있는 하늘 아래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시선으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늘을 열어 주시고 그 하늘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400년 동안 조용히 하늘 아래 있었던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하늘을 열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죄 없으신 아들을 죄인의 줄 맨 끝에 서게 하심으로 우리의 자리가 마련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자격을 계산하며 머뭇거리지 않게 하시고, 이미 찢어진 휘장 사이로 담대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무엇을 해내야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우리를 향해 이미 하신 그 말씀 위에서 한 주를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열린 하늘의 소식을 우리만 누리지 아니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힌 것 같을 때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하늘을 열려 하지 마십시오 — 하늘은 위에서 열립니다.
  • 2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을 스스로 계산하며 머뭇거리지 말고, 찢어진 휘장 사이로 담대히 걸어가십시오.
  • 3"무엇을 해내야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실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힘을 쓰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늘을 열어 주시고 그 하늘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400년처럼 조용한 하늘 아래 있던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하늘을 열어 주시고, 죄 없으신 아들을 죄인의 줄 맨 끝에 서게 하심으로 우리의 자리가 마련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격을 계산하며 머뭇거리지 않게 하시고, 이미 찢어진 휘장 사이로 담대히 걸어가게 하옵소서. 이 열린 하늘의 소식을 우리만 누리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전글목록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