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에스겔 34장 1절부터 10절, 또 베드로전서 5장 1절부터 4절 말씀을 통해서 "너희가 양들을 먹여야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친히 내 양을 찾으리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에스겔 34장은 이렇게 고발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다"라는 고발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양을 찾겠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내용은 "누가 잘못했느냐"라는 비난과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것이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주제를 먼저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에 집중해서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목자라고 불릴 수 없는 그런 목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절에서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에는 진노의 뜻이 있고, 또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서는 "슬프다"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진저라고 진노하시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순종하지 못하는 목자들과 잃어버린 양들을 향해서 슬퍼하는 마음도 함께 가지고 계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혼낼 때도 화가 나서 혼내지만, 그 속에는 자녀가 제대로 살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자리에서 우리가 웃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슬퍼하면 자녀도 함께 슬퍼하는 것입니다. 오늘 찬양 중에 "아버지의 눈물이 있는 곳에 나의 눈물이 있기를 원합니다"라는 가사가 있었는데, 그처럼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곳에서 우리도 함께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슬퍼하셨을까요. 2절 말씀에서 목자는 양을 먹이는 자입니다. 그런데 "자기만 먹는다"라고 했습니다. 목자라는 말과 먹인다는 말은 같은 의미인데, 목자가 양을 먹이지 않고 자기 혼자 배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목자가 자신의 직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3절과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의 죄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3절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고, 4절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먼저 해서는 안 될 일은 살찐 양을 잡아 기름을 먹고 그 털을 입은 것입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러했습니다. 백성들이 양과 소와 재물을 가져오면 좋은 것은 자기들이 먼저 취하고 숨겨서 먹었습니다. 결국 이 둘은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기고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도 목자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양을 배부르게 해야 할 자들이 자기만 배부르게 하고, 양을 잡아 먹고 그 털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입니다. 4절에는 다섯 가지가 나옵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였고, 상한 자를 싸매지 아니하였고,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였고,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대상은 모두 약한 자들, 상처 입은 자, 연약한 자, 쫓기는 자, 상한 자,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들을 돌보아야 할 자들이 돌보지 않은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이것을 "포악"이라고 부르십니다. 포악이란 자신이 가진 힘과 권세로 연약한 자를 도와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고 도리어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포악한 목자 아래 있던 양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에서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목자가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니 양들이 흩어지고, 흩어진 양은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양은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무리에서 뒤처지거나 낙오된 양은 다시 무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무리에서 흩어지는 것은 곧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6절에서 중요한 것은, 양들이 다 흩어지고 잃어버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 양을 찾으러 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목자라는 이름과 직분을 가진 사람은 많았지만,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비유를 드셨습니다.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으면, 선한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갑니다. 잃어버린 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양을 찾으러 가는 사람입니다.
목자들이 찾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고 있을 때, 누가 일어서십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에서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목자들을 대적하시는 이유는 목자를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6절에서도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라고 하셨고, 15절에서는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앞서 말한 상한 자, 쫓기는 자, 연약한 자, 잃어버린 자를 하나님께서 친히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상한 자는 싸매어 주시고, 쫓기는 자는 지켜 주시고, 연약한 자는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일은 목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분과 사명을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인데, 그들이 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목회자만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도 각자 맡은 직분이 있는데, 그 직분에 맞는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선한 목자다. 삯꾼 목자는 이리가 오면 양 떼를 버리고 도망가지만, 선한 목자는 양 떼를 지키고 그 양 떼를 위해서 희생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에스겔 34장의 말씀을 기억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는데, 그것이 곧 십자가 사건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요한복음 21장에서, 갈릴리 호수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그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시면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양을 치고 먹이는 자의 자세를 이렇게 말합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득을 위해서 하지 말고 기꺼이 하고,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본이 되는 자세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오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더러운 이득이 아니라 기꺼이,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본이 되는 자세로 섬길 때, 그것을 판단하고 평가하시는 분은 총회도, 여론도, 주변 사람들도 아니라 목자장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게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누가 판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수고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에스겔 34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자기를 먹이고 있는가, 아니면 나에게 맡겨진 사람을 먹이고 있는가. 나만 배부르려 하고 나만 채우려 하는가, 아니면 내가 맡은 일과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나누고 섬기고 있는가. 그리고 두 번째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실패한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채워 주신다는 약속을 하나님께서 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를 채우고 나를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그들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이 목자 된 우리의 사명임을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찾고 찾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 누가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주시고, 그 잃어버린 자들을 친히 불러 주십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본이 되십니다. 그 예수님을 본받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본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섬기게 해 주시고, 또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 친히 내려오신 우리 예수님만을 우리들의 소망으로 삼게 하여 주시고, 그 예수님을 본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