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느헤미야와 하박국에 있는 말씀을 통하여서 풍년에도 흉년에도 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이제 시작이 됩니다. 명절이 되면 즐거운 사람도 있지만 또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고향 가는 길이 막히고 선물을 사는 용돈도 부담이 되고, 또 오랜만에 만난 친척은 취업을 했느냐 결혼을 하느냐 아기를 낳느냐 여러 가지 그러한 얘기들을 많이 나누는데 그것이 기쁜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그런 거 다 내려놓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모두가 다 즐거운 그런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서로 다른 두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70년이 지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기쁨의 아침이었고, 또 하나는 바벨론이라고 하는 그 나라의 멸망을 앞두고 있는 절망의 아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두 아침을 통하여서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느헤미야 8장에 있는 말씀은 회복의 자리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이제 70년 만에 그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습니다. 포로로 잡혀가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들을 이들이 다 소실했어요. 다 없어졌어요. 그래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가서는 그곳에 성전도 없었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제사의 모양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70년 동안 꼭 그렇게 모였던 거예요.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말씀도 듣지 못하는 생활을 하였어요.
70년이 지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까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지고 성문은 불에 타 있었거든요.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만에 돌아왔지만 마음 놓고 지낼 곳조차 없는 거예요.
그 소식을 느헤미야가 듣고 통곡을 하고, 왕에게 고백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고치고 수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어요. 예루살렘에 와서 여러 방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수축했어요. 무너진 곳과 끊어진 곳을 세우고 이어서 예루살렘 성벽을 다 수축했거든요. 성벽이 서고 나니까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다 모여서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어요. 포로로 흩어졌던 그 오랜 세월을 지나서 온 백성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게 된 거예요.
오늘 8장을 보면 수문 앞 광장에 다 모여서 하나님의 성경을 에스라 학사가 낭독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을 때 이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오늘 9절에서도 보았지만 다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왜 울었습니까? 그 성경에는 너희들이 이렇게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났다는 그 모든 내용이 다 기록되어 있거든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70년 만에 돌아온 자신들이 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거예요.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에서도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앎이라 하였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줄 때 레위 사람들이 또 설명을 해주니,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잘못을 했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 하나님을 우리 조상들이 떠났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무엇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때 그들이 그들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우는 거예요. 자기들의 죄를 생각하니까 이 백성들이 울었거든요. 말씀을 깨닫는 것도 우리 머리가 좋아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마음을 열어 주실 때에 비로소 내 죄가 보이고 회개가 터지는 거예요.
그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처럼 얘기합니다. 너희들 울지 말아라. 너희들이 이렇게 죄를 깨닫고 이제 회개하였으니 이제는 울지 말아라. 이날은 하나님의 성일이니 먹고 마시고 나누어주고 즐거워하라고 느헤미야가 얘기를 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지금 이날은 어떤 날입니까? 마음의 풍년을 맞이한 날이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는 거예요. 느헤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기쁨을 다시 되찾고 그들의 감사를 다시 되찾게 되는 장면이 오늘 이 느헤미야의 장면이에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아는 데서 회복되어진다고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아는 것이 누구를 아는 거예요? 하나님을 아는 것.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면 우리의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지었던 죄를 다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그러므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이 기쁨을 얻고 다시 회복이 되었어요. 그래서 아까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회복의 시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너희들이 울지 말고 먹고 마시고 나누어주고 즐거워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명절에 어떻게 해야 돼요? 가족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그다음에 뭘 하라는 거예요? 나누어주고, 그다음에 즐거워하라는 거예요. 물론 이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서 즐겁게 된 것이지만, 그 즐거움의 모양이 어떻게 나타나는 거예요? 온 가족이 먹고 마시고 이웃에게 흘러갈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가족끼리 먹고 즐겁게 마시고, 또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그러한 명절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두 번째는 흉년의 자리예요. 하박국서 3장에 있는 말씀은 어떤 내용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예언을 해요. 너희 유다가 멸망할 것이다,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하박국이 하나님 앞에, 하박국서 1장 2장에 보면 그렇게 하소연을 해요. 하나님, 이스라엘이 이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데 왜 고통을 당하고 왜 저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까 라고 1장 2장에서 하나님 앞에 따져 물어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따지지는 않지만 우리는 좀 간이 작아서 따지지는 않지만, 하나님 왜 이렇게 내 일이 안 풀려요, 하나님 내가 왜 이렇게 막혀 있어요, 왜 내 앞에 이렇게 장애물이 있어요 하고 하소연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따져 물었어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느냐 하고 따져 묻게 되거든요.
그때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얘기를 합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이 얘기하신 그 과거의 일들을 생각을 해요. 지금 미래는 흉년이에요.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70년 포로 생활할 것을 하나님이 알게 해주셨거든요. 분명 이 미래는 흉년인데 하박국이 감사를 하는 거예요. 그 감사의 이유가 뭐냐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게 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애굽에서도 건져 주시고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시고 광야에서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과거의 일들을 쭉 생각해 보니까, 미래는 흉년이지만 과거의 일을 생각하니까 무엇이 넘치는 거예요? 감사가 넘치게 되었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는 거예요.
풍년에는 느헤미야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백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 나의 힘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흉년에 하박국이 고백하는 것도 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기뻐한다 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풍년의 주제도 하나님이 되고 흉년의 주제도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때로는 앞에 흉년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장애물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시는 분이 혹 계시다면, 오늘 이 하박국을 보니까 그럴 때 과거를 한번 생각해 봐라, 옛날을 한번 생각해 봐라 하면, 아마 지금 내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어요. 그것이 하박국의 모습이었다는 거예요. 흉년의 때에도, 분명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있음에도 그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감사한 것이고, 그 포로생활 속에서도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박국은 흉년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를 해요.
우리들이 욥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온전하고 정직하다고 칭찬하시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 욥이 어떻습니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자식들은 집이 무너져 하루아침에 다 죽게 돼요. 그때 욥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뒤에는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몸에는 종기가 곪아서 기와 벽돌로 자기 몸을 긁는 극한의 상황에까지 이르는데, 그런 자리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풍년의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던 그때의 주인공도 하나님이셨고, 흉년의 때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하박국이 고백했던 그 주인은 하나님이셨고, 욥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 상황에서도 고백했던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을 해요. 요셉은 그의 삶 속에서 풍년부터 흉년까지 다 지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7년의 풍년을 보내고, 또 7년의 흉년을 보낸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어요. 요셉이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그곳에서 결혼을 해요.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고 하는 두 아들을 낳아요. 므낫세는 하나님이 잊게 하셨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번성하게 하셨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어요.
요셉은 그 풍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두 아들의 이름을 자기 뜻대로 짓지 아니하고, 그 이름의 뜻의 주인이 누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요셉은 표현을 했어요. 므낫세는 하나님이 과거의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다 잊어버리게 해 주셨다는 뜻이고, 에브라임을 낳았을 때는 하나님이 번성케 해 주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이 요셉은 풍년의 때 두 자녀를 얻을 때도 누구를 고백해요? 하나님을 고백을 해요.
그리고 이제 7년이라는 흉년의 시간을 맞이할 때, 요셉이 누구를 만나냐면 자기를 팔고 미워하였던 형들을 만나게 돼요. 형들을 만났을 때 요셉이 고백을 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형들을 위로를 해요. 형들이 그 말을 듣고 안심을 합니다. 그때는 아버지 야곱이 살아 있었어요. 요셉이 형들을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지만, 할 수도 없었어요. 아버지 야곱이 딱 무게중심을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야곱이 죽었어요. 무게중심을 잡고 있었던 아버지가 죽으니까 형들이 어떤 마음이 들겠어요. 이제 큰일 났다, 그동안에는 아버지가 우리의 방패막이가 됐었는데, 아버지가 죽으니까 형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요셉에게 쫓아가요. 요셉에게 가서 뭐라고 얘기했냐면, 너 아버지 살아계실 때 아버지한테 맹세했던 거 기억하지, 우리의 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아니하고 그냥 다 덮어주겠다고 한 그 맹세를 기억하지 하면서 형들이 요셉에게 얘기를 합니다.
그때 요셉이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형님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진 그 시간, 내가 감옥에서 세월을 보냈던 그 모든 고통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인도해 주셨고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요셉이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풍년의 때에도 하나님을 고백하였고 흉년의 때에도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들이 요셉처럼 잘 참으면 언젠가 총리가 된다,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믿는 성도들이 참아야 된다, 인내하면 좋은 일이 생기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늘 요셉이 풍년에도 고백하였고 흉년에도 고백한 그 핵심은, 내가 스스로 뭘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그의 고백이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고백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어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얘기를 해요. 예수께서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는데 너희가 못 박아 죽였다 라고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습니까? 그것은 악한 행위예요, 죄예요. 그것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악한 일을 이들이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섭리하심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골고다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흉년의 자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거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갈라졌다, 헤어졌다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이 우리가 받아야 할 버림을 우리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 고통 속에서, 그것은 우리들이 받아야 될 죄를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담당하셨다, 갚아주셨다는 것을 얘기해 줍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요. 히브리서 12장 2절에 있는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그 고통과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참으실 때에 그냥 참으신 게 아니라, 그 앞에 놓인 기쁨을 바라보시면서 참으셨다고 기록을 해요. 그 기쁨이 뭐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하여서 본인은 죽었지만, 예수님이 죽음으로 인하여서 대신 누구를 얻었어요? 우리를 얻으시는 그 기쁨이었어요. 히브리서에서는 그렇게 기록해 주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하여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살아나고, 그 은혜를 입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무엇을 얻게 되는 거예요? 우리를, 나를 얻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도 부끄러움도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뭐 하실 수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를 얻으실 그 기쁨을 바라보셨기에 참으실 수 있었다고 히브리서에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신 그 이유는 바로 누구 때문이라? 나 때문이라, 우리 때문에 십자가의 그 고난과 부끄러움과 고통도 다 참으셨다고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고난도 우리를 얻으실 기쁨을 바라보며 참아내셨다고 히브리서에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기뻐하는 근거는 곳간이 풍성하다고 해서, 또 곳간이 비어서도 우리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쁨의 근원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나님께 있다, 예수님께 있다는 것, 그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흉년의 아침에도 풍년의 아침에도 성경은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얘기를 해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해라.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해라. 욥과 같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러한 때에도, 요셉과 같이 형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너희들은 하나님을 기뻐해라. 왜냐하면 우리 뒤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기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그렇게 기록을 했어요.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 가운데 하나잖아요. 항상 기뻐하라. 풍년에도 흉년에도,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곤핍한 처지에 처하여도 항상 너희들은 기뻐해라. 너희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 너희 뒤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이번 추석은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기쁜 그런 추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기쁨이 형편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우리의 피할 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채워 주실 때는 준비하지 못한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해 주시고, 비워지는 자리에서는 앞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하신 일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번 명절에는 마음이 무거운 성도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또 가장 큰 흉년의 자리를 지나 우리를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