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금요일부터 추석 명절이 시작됩니다. 명절이 즐거운 사람도 있고, 막히는 귀성길과 선물 비용, 오랜만에 만난 친척의 취업·결혼·자녀 이야기가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서로 다른 두 아침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뻐하는 기쁨의 아침이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에 의한 나라의 멸망을 앞둔 절망의 아침입니다.
느헤미야 8장은 회복의 자리, 곧 풍년의 자리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 동안 이스라엘은 성전도 제사도 말씀도 없이 살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은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은 불에 타 있었고, 느헤미야는 그 소식에 통곡하며 왕에게 청하여 예루살렘으로 와 52일 만에 성벽을 다시 세웠습니다. 성벽이 서자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고, 포로로 흩어졌던 오랜 세월을 지나 온 백성이 한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게 됩니다.
하박국 3장은 흉년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이라고 알려 주셨고, 하박국은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 하박국이 3장에 이르러서는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합니다. 풍년의 아침에도 흉년의 아침에도 성경은 같은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랜 포로 생활 끝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의 첫 반응은 우는 것이었습니다(9절). 율법책에는 그들이 어떻게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는지가 다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풀어 주고 레위 사람들이 설명해 주자, 백성은 왜 자신들이 70년 동안 포로로 살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조상들은 그 하나님을 떠났구나 하는 것을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깨달았고, 자기 죄를 생각하니 울음이 터진 것입니다. 12절은 이것을 "그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고 말합니다. 이 깨달음도 사람의 총명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으로 마음을 열어 주실 때 비로소 죄가 보이고 회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때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말합니다. 울지 말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으니 이제는 울지 말라. 이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즐거워하라. 그들에게 이날은 마음의 풍년을 맞이한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쁨을 되찾고 감사를 되찾는 장면이 느헤미야 8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아는 데서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그동안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며, 그 자리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백성이 함께 고백한 것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였습니다.
그 즐거움의 모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뿌리는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아는 데 있지만, 그 기쁨은 식탁에서 가족과 나누고 이웃에게 흘러가는 모양으로 드러납니다. 이번 명절에도 가족끼리 먹고 마시며,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박국 앞에 놓인 미래는 분명한 흉년이었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오고 70년 포로 생활을 하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간이 작아서 하나님께 따지지는 못하고, 왜 내 일은 이렇게 안 풀리는지, 왜 내 앞은 이렇게 막혀 있는지 하소연만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따져 물었고,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지나온 일들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애굽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지키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쭉 돌아보니 미래는 흉년인데도 감사가 넘쳤습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하박국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이고, 포로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도우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풍년의 느헤미야에서 백성이 고백한 것은 여호와가 나의 힘이시라는 것이었고, 흉년의 하박국이 고백한 것도 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풍년의 주제도 하나님이고 흉년의 주제도 하나님입니다. 지금 앞에 장애물이 있어서 어떻게 피해 갈까, 어떻게 넘어갈까만 생각하고 계십니까. 하박국처럼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장애물 앞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욥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온전하고 정직하다고 칭찬하시던 욥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자식들은 집이 무너져 한날에 죽었고, 그 자리에서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뒤로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했고, 몸에는 종기가 나서 기와 조각으로 긁는 극한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지만, 욥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잃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풍년부터 흉년까지 다 지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 풍년 중에 두 아들을 낳았을 때, 요셉은 이름을 자기 뜻대로 짓지 않았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지난 고생을 잊게 하셨다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풍년의 자리에서 자녀를 얻을 때도 요셉은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7년 흉년이 닥쳐 자기를 미워하고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는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며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무게중심이었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이 두려워하며 아버지께 했던 맹세를 기억해 달라고 찾아왔을 때도, 요셉은 구덩이와 감옥의 고통은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계셨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처럼 잘 참으면 언젠가 총리가 되고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셉이 풍년에도 흉년에도 고백한 핵심은 내가 스스로 무엇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인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하신 분이 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셨는데 너희가 못 박아 죽였다고 설교합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악한 행위이고 죄이며, 그 사실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일 위에 섭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골고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흉년의 자리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갈라지셨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 할 버림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시고 갚아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놀라운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그냥 참으신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놓인 기쁨을 바라보시며 참으셨습니다. 그 기쁨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얻으시는 기쁨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살아나고, 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신 이유는 나 때문이고 우리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흉년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얻으실 기쁨을 바라보며 참아내셨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근거는 곳간이 풍성해서도 아니고 곳간이 비어서도 아닙니다. 우리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 예수님께 있습니다. 풍년의 아침에도 흉년의 아침에도 성경은 동일하게 말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라. 욥처럼 모든 것을 잃은 때에도, 요셉처럼 오해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기뻐하라. 우리 뒤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 가운데 하나에 이렇게 썼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풍년에도 흉년에도, 모든 것을 잃어도 곤핍한 처지에 놓여도 항상 기뻐하라. 우리 뒤에 하나님이 계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