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 19절 말씀을 통해서 회복하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부터 3주간, 자책하는 자리에서, 혹은 실망이나 낙심의 자리에서 사명의 자리로 옮겨 가자는 주제로 같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간혹 밤에 잠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거나 조용한 시간에 생각에 잠길 때,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 후회하는 생각, 스스로를 비판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추는 그런 생각들을 우리가 혹시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저 같은 경우에도 어렸을 때, 그때는 카세트 테이프나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사 주시면 호기심에 그걸 다 뜯어 봤어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뜯어 보니까 다시 조립을 못 하는 거예요. 새것을 한두 달 쓰다가 뜯었다가 고장 내고, 또 고장 내고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 아버님께 꾸중을 많이 들었죠.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런 거였어요. "너는 어떻게 물건이 네 손만 타면 다 못 쓰게 되고 다 망가지냐." 그런 얘기를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커서도 때때로 마음에 올라와요. 일이 잘 풀리고 형편이 좋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 조금 실패하거나 좌절하거나 낙심이 되면 옛날에 들었던 그 얘기부터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오늘 저는 자책이라고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자책은 내 스스로에게 그냥 묻어 두고 있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요즘에는 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쓰죠. 스스로 자책하고 스스로 비판하고 스스로 판단하다 보면 결국 나의 자존감이 점점 낮아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회개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받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쉼을 얻습니다. 그러나 자책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은 우리 가슴속에, 마음속에 늘 남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해하기도 해요. 마음에 품고 얘기를 안 하니까 저 사람이 겸손한가 보다 하는데, 결코 겸손한 모습이 아니라 자존감이 낮아진 모습이에요.
그러면 이렇게 자책하고 실망하고 낮아진 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사용하실까요? 우리 일상 속에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내가 나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그 자리에서 내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교훈은 "예스"라는 거예요. 우리가 자책하고 실망의 자리에 있지만 다시 사명의 자리로 일어설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스입니다. 모세도 40년을 애굽의 궁정에서 살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애굽 사람을 쳐 죽이죠. 그것이 발각되고 광야로 도망치지 않습니까? 그렇게 광야로 도망친 모세를 하나님께서 40년 후에 부르십니다. 가시떨기나무를 통해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는 거절하고 거절하고 또 거절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시고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으리니 이제 가라" 하시면서 그 절망과 낙담과 좌절 속의 모세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부르시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생각하면 금방 떠오르는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의 수제자가 떠오를 수도 있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하고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떠오를 수 있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그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대제사장의 뜰에서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닭이 울 때 통곡하며 회개하죠. 그런데 그렇게 통곡하고 회개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가 갈릴리 호수로 다시 가서 옛날에 하던 본업, 어부의 일로 돌아간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경험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베드로는 두 번이나 만났어요. 두 번을 만났는데도 그는 옛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는 거예요.
그곳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가 회개하고 감격하고 은혜를 입어서 예수님께 다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가서 다시 고기 잡는 그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고, 내가 있는 낮은 자리까지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나를 만나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는 내가 열심히 찾아간다고, 내가 열심히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예수님께서 그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나를 만나 주시고 나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받으면 안 넘어질 것 같습니까?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안 넘어질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따랐던 아브라함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던 사람입니다. 모세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던 사람이에요.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였지만 이세벨의 한마디에 넘어졌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악착같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우리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과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넘어짐 속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옛날에 권투 선수 홍수환 선수가 4전 5기를 해낸 것처럼, 의인은 칠전팔기의 신앙이라는 거예요.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낮은 자리까지 오늘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가 회복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물러나 있는 자리, 스스로 자책하는 자리가 있다면, 주님께서 이미 그 자리까지 내려오셨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좌절하고 낙심하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스로 자책해서 "나 혼자밖에 없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이미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기다리시고 나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그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해요.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오셔서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습니다. 이 숯불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딱 두 번 나와요.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부인할 때 피워져 있던 숯불,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해 생선을 구운 숯불입니다. 그 숯불을 볼 때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아, 예수님께서 내 죄를 들춰내시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뭔가 섬뜩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잖아요. 베드로는 숯불에 이미 한 번 놀랐는데 예수님께서 그 숯불을 피우시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제 준비를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나를 뭐라고 꾸짖으실까. "너 그때 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냐? 그러고도 네가 내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어쩌면 혼날 준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책망하지도 않고 꾸짖지도 않고, 베드로를 먹여 주셨습니다. 그 구운 생선을 베드로에게 먹여 주셨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책망하고 우리의 죄를 들춰내서 부끄럽게 하고 자존감이 더 떨어지도록 더 낮은 자리로 몰아세우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먹을 것을 먼저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가시떨기나무가 불에 타는 곳으로 모세가 오잖아요. "네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하고 모세를 부르셨어요. "너 왜 40년 전에 네 생각대로 좌우를 살피고 네 맘대로 행동했느냐, 이왕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해야지 그게 무서워서 40년을 광야로 도망쳤느냐" 하고 추궁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잘못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자책하고 넘어져 있는 모세를 부르셔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 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어? 나는 네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줄 알았는데"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를 책망하고 죄를 들춰내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먼저 하신 일은 베드로를 먹여 주시고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인한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전의 베드로는 어땠습니까? 그의 성격상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버려도 나만큼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고백하던 베드로였어요. 혈기가 있어서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왔을 때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잘라 버린 급한 성격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베드로는 무슨 고백을 합니까? "내가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하십니다"라는 고백을 드려요.
에스겔 37장에 마른 뼈 환상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가셔서 마른 뼈들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물으세요.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그때 에스겔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아십니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만 아십니다, 주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에게 명령하시니 뼈들이 일어나고 힘줄과 살이 붙고 생기가 들어가서 큰 군대를 이루는 것을 보여 주시죠.
오늘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이에요?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의 입술로 무엇을 고백하게 만드십니까?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 하십니다"라는 고백으로 바뀌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를 따르라." 오늘 19절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제 다시 회복되었으니 평탄한 길을 가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며 놀라운 길을 갈 것이다"가 아니라, 너는 순교를 당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회복되고 다시 일어서면 평탄한 길, 잘되는 길, 승리의 길을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오늘 주님께서 회복시키신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은 "너는 나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다"였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십니까? "그러나 너는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있는 자리까지 내려오셨고 그곳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셔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묻어 두었던, 혹은 잊어버렸던 직분과 사명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그 자리까지 오셔서 여러분의 직분과 사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여러분과 함께해 주시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물러가 있던 고향의 호숫가까지 찾아오셨습니다. 부인했던 그때와 같은 숯불 앞에서 주님은 베드로를 먹이시고,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그 사명의 자리로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실패가 여러분의 사명을 취소시키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실패가 여러분의 직분을 취소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군대에 이런 구호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나온 부대예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한 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분을 주셨으면, 여러분이 실패하고 넘어져도 그 직분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명을 붙들고 이 한 주간 주님과 동행하면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말씀해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회복과 우리를 일으키심이 주님의 십자가 위에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 다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의 자리를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 직분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