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가랴서 3장 1절에서부터 5절, 로마서 8장 1절 말씀을 통하여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에 대해 배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은혜를 입었음에도 갈릴리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때, 예수님께서 그 자리로 내려오셔서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기 전에, 지난 시간에 베드로가 회복되고 사명을 받은 것을 배웠음에도 우리 마음에는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정말 내가 용서함을 받았을까, 정말 내가 주의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우리는 뭔가 확증을 받고, 확실하게 판결이 내려지고 도장이 찍힌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전세나 월세 계약을 해도 계약서에 쓴 대로 그냥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믿지 못하니까 동사무소나 등기소에 가서 확정일자를 받습니다. 그래야 안심이 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민사든 형사든 다툼이 있고 고발이 있으면 개인적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 되니까 재판에 가져갑니다. 1심, 2심, 3심을 거쳐 판사가 이것은 이것이다, 저것은 저것이다 하고 판결을 확정지을 때 비로소 믿게 되고, 편안함을 얻고, 확신을 갖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어쩌면 그런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해 주시고 「내가 너를 회복시켰다, 네 죄를 내가 다 용서했다, 그러니 일어서라, 다시 힘을 내라」 하십니다. 우리는 수없이 그 말씀을 듣고 수없이 그 말씀으로 일어서지만, 일어섰다 넘어지고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계속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 죄가 깨끗이 사해졌다는 것을 문서로 만들어 도장을 딱 찍어 주시면 마음이 더 확실해지고 분명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은 그렇게 문서화되고 확정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용서했다 용서했다 하셔도 눈에 보이는 확정이 없으니, 시련이 오고 환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우리는 또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내가 옛날에 이런 죄를 지었는데 하고 옛날 일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래서 가다가도 넘어지고 가다가도 넘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생각이 내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생각만은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참소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 참소하는 자가 자꾸 옆에서 나의 잘못, 나의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너는 더럽다. 너는 죄가 있다. 지난번에 용서받았다고 했지만 그러고 나서 주의 뜻대로 살았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100퍼센트 순종했느냐? 아니지 않느냐? 또 미움도 생겼고 아픔도 생겼고 다툼도 생겼다. 죄가 깨끗이 용서받았다고 하지만 너는 아직 멀었다.」 참소자가 옆에서 계속 이렇게 부추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끗함을 입었다고 생각했다가도, 정말 내가 용서받은 게 확실한가, 아직도 내 죄가 용서받지 못한 것 같다 하며 자책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사해 주시고 용서해 주신 것을 확정짓자는 뜻으로 본문을 같이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스가랴서 3장의 배경을 보면, 남유다가 주전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끝에, 주전 538년에 고레스 왕이 유대 민족에게 너희 고향으로 가라고 칙령을 내립니다. 주전 537년에 스룹바벨이 약 4만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1차 귀환이라고 합니다. 돌아와서 보니 성벽도 무너지고 성전도 무너져 있어서, 536년부터 성전을 복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막 복구를 시작하자 주변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것을 원치 않아 방해를 합니다. 위협하고 방해해서, 성전을 복구하려고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16년이 지났습니다. 성전 재건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 환상을 주시고 메시지를 주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에 성전도 신앙도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섭니다. 그런데 대적하는 자가 오른쪽에서 그를 고발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은 재판정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피고인으로 서 있고, 사탄, 곧 참소하는 자가 여호수아를 고발합니다. 무엇으로 고발합니까?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러운 옷을 입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느냐, 못 세운다고 고발합니다. 「더러운 옷」이라고 번역했지만 오물이 묻은 옷을 가리킬 만큼 강한 말입니다. 그런 옷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느냐고 계속 고발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용서받았다고 하지만 「네가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하고 더러운 행동을 하고 잘못한 행동을 하는데, 그 마음으로 어떻게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시겠느냐, 너의 그 모습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절대로 받지 않으실 것이다」 하고 참소자가 고발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용서함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더러운 모습, 부끄러운 모습, 연약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까 하는 것입니다. 참소자는 그것을 계속 우리에게 주입합니다. 「너는 더러워. 너는 잘못을 저질렀어. 너는 미운 마음을 아직 가지고 있잖아. 너는 아직도 싸우는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은 더러운 옷이잖아.」 이것이 참소자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발하는 모습이고, 그 결론은 이것입니다. 너 그 더러운 모습으로는 성전을 못 짓는다. 너 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 봤자 소용없다. 하나님께서 너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까요, 받지 않으실까요? 참소자는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자기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변호하지 못합니다. 그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참소자를 꾸짖으십니다.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꾸짖노라.」 이 여호수아가 더러운 것도 내가 아는데, 너는 그를 고발하지 말라 하시며 참소자를 꾸짖으십니다. 그러면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그리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있어서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십니다. 그 옷을 벗기라. 「스스로 벗어라」가 아니라 「벗겨라」입니다. 그리고 새 옷을 입혀 주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은혜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가 그 십자가에서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 깨끗함을 입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겨 주시고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은 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분명 죄를 지었습니다. 문제는 그 죄를 누가 처리하느냐, 어떻게 처리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옷을 벗겨 주시고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위로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람의 잘못이나 부족한 것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네가 잘한 거야.」 이렇게 위로하지, 「네가 잘못했어, 그건 너의 실수야」 하고 위로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위로받으려고 했는데 자꾸 나의 죄를 지적하고 네가 잘못했다고 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위로하는 사람은 항상 상대방을 인정하는 말을 해 줍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너는 죄인이다」 하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잘못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까지 말해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을 예수님께서 다 감당하시고 대신 받으셔서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되, 그 죄값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죄값을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값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해결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히셨다고 해서 여호수아의 죄 자체가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제거하시고 새 옷을 입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죄의 값은 그냥 넘어가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로마서 8장 1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여호수아를 변호할 사람이 없던 그 법정에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변호해 주십니다. 히브리서는 그 예수님을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이 참소자가 또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참소자가 쫓겨나고 성도들이 어린 양의 피로 그를 이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참소자가 쫓겨났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판결이 선언된 장면까지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하늘 법정에서 그는 이미 고발할 자격을 잃었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우리를 고발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날까지 이 참소자는 우리 귓가에서 계속 속삭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을 듣고 돌아가도 참소자가 또 고발합니다. 세상 법정에는 1심, 2심, 3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법정은 한 번에 끝나는 최종심입니다. 참소자에게는 항소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확정을 받아 담대함을 가졌을 때에도 참소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우리 곁에서 속삭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이만큼 든든해졌다가도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닥치면 참소자가 슬그머니 또 고발합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누구랑 다투거나, 계획한 일이 잘 안 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때 참소자가 쓱 나와서 고발합니다. 「너 네 잘못 아직 다 용서 안 받았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너는 깨끗이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 이렇게 잘못을 저지르는 거야. 이렇게 실수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거야.」 그러면서 우리의 과거를 끄집어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주님 오실 때까지입니다. 우리가 확증을 받아도 그날까지 사탄, 이 참소자는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죄를 끄집어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우리에게 이미 판결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참소자가 계속 우리 귓가에서 잘못을 속삭이는 이유는, 그 판결을 잊고 스스로 다시 나를 재판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드는 자책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모든 찔림이 참소는 아닙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는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데려가 회개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재판정에서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미 끝났기 때문에, 닫힌 문을 자꾸 다시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판결을 확정지으셨으니, 죄를 지었을 때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되, 이미 용서받은 죄로 나를 다시 재판하는 자책에서는 일어나 성령을 따라가는 쪽으로 마음이 옮겨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4절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제 우리는 자책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자책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잘못했어, 내가 하는 일은 왜 이럴까, 오늘도 실수했네」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이미 재판에서 판결이 났다. 하나님께서 이미 판결하셨다. 내가 너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셨다.」 다시 한번 결심하고 결단하셔서, 성령의 이끌림으로 행동하며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결론을 맺습니다. 여호수아는 옷을 스스로 벗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셨고, 우리의 옷을 벗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고발자의 법정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정에 서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발자의 법정에 서 있으면 나는 계속 고발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 서 있으면 이미 내가 깨끗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새 옷을 입혀 주셨다는 그 판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법정에 서 있다는 것, 그래서 판결을 이미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자책하고 낙담하는 삶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늘 더러운 옷을 입은 자로 우리 스스로를 생각하고, 참소하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던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오늘 주님께서 그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는 선언을 우리가 듣고 확증받은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그 말씀을 붙들게 해 주시고, 이제는 성령을 따라 새롭게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