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강해 · 2026.08.26

묵은 누룩을 쓸어 내라 (유월절 양이 이미 죽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5:1-8 · 고린도전서 강해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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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린도전서 5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묵은 누룩을 쓸어 내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유월절을 앞둔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한 순서가 있습니다. 유월절 전날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등불을 하나 켜고, 그것을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핍니다. 부엌 천장, 항아리, 문지방까지 뒤지며 찾아낸 부스러기들 — 과자 부스러기처럼 구석에 숨어 있는 것들 — 을 다 찾아내 태웁니다. 그것들이 바로 누룩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전통을 고대 문헌과 미쉬나 같은 책에 기록하여 하나의 행사로 진행합니다.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정결한 행위입니다.

이 행사의 근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할 때 마지막 날 밤의 모습을 기념하는 데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던 그 밤에는 반죽을 발효시켜 요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급하게 나와야 했기에 부풀지 않은 떡을 등에 지고 나왔습니다. 그 부풀지 아니한 떡, 무교병은 이들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증거물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누룩은 무엇이겠습니까? 누룩 없는 떡이 애굽에서 해방된 증거라면, 누룩은 애굽에 그대로 남아 있는 증거, 과거 애굽에서 살 때 가지고 있던 것들의 증거입니다. 성경은 누룩 있는 떡, 애굽에서의 증거들은 다 내버려 두고 누룩 없는 해방의 증거를 가지고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바로 그것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등불을 들고 뒤지라고 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너희 교회"입니다. 교회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누룩을 찾아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었는데, 바울이 진짜로 화가 난 것은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아니하는 교회에 대해서였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징계를 받는 것이 마땅한데, 교회가 아무런 제재도 취하지 아니하고 그냥 방치하고 묵혀 둔 것에 바울이 더 화가 났다는 것이 고린도전서 5장의 내용입니다. 세 가지를 살펴봅니다.

첫째,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1절에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라고 기록합니다. "아버지의 아내"는 아마 계모일 것입니다. 레위기 18장, 신명기 22장에서 이런 일을 분명히 금하고, 당시 로마법에서도 금했습니다. 성경도 로마법도 금하는데 오히려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바울이 분개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다른 지역에 있는데 이 소문이 그에게까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교회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2절에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시선은 그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향합니다.

바울이 책망하는 단어는 "이 사람이 음란한 죄를 범했다"가 아니라 "너희가 교만하여졌다"입니다. "교만"은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는 뜻입니다. 누룩으로 빵이 부풀었는데 속은 비어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죄를 안고서도 넉넉하다고 여기는 그 자신감 자체가 이미 누룩이고 교만입니다. 그것을 통한히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가슴을 치며 애곡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정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하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방치된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나는 이만큼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 죄를 지은 사람도 판단하지 않으니 나는 사랑이 있고 관용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6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지적합니다. "나는 관용하다, 나는 자유하다" 하며 우쭐하는 것이, 사실은 자기 믿음을 자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개인의 일로 끝나지 아니합니다. 교회 안에서 지어진 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는 각자 알아서 사는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한 명이 물을 흐리면 전체가 다 흐려지는 공동체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라는 말처럼, 교회 안의 작은 누룩들이 결국 크게 번집니다. 본문 뒤 11절에서 바울은 음행하는 자뿐 아니라 탐욕을 부리는 자, 우상숭배하는 자, 모욕하는 자, 술 취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와도 사귀지 말라고 나열합니다. 누룩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누룩이 교회 안에 작게 분포되어 있는데, 내버려 두면 큰 덩어리가 됩니다.

둘째, 우리는 이미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누룩을 버려야 누룩 없는 자가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너희는 이미 누룩이 없는 자이니, 그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라고 말합니다.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한때 우리는 "교회의 문턱이 높다"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못 오는 사람이 "나는 죄를 많이 지었는데 어떻게 교회에 가겠습니까? 이 죄를 다 씻어 내고 깨끗해진 다음에 오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묵은 누룩을 다 내버린 후에 새로운 모습으로 오겠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다. 너희가 이미 깨끗한 자이다. 교회 안에 와서 너희가 가지고 있던 누룩을 내버리라"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화가 갈려 있고, 성도끼리 세상 법정에 고소고발하고, 성찬의 자리에서 늦게 온 가난한 성도는 굶고 돌아가고, 음란한 사건까지 있었던 그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가 누룩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으므로 우리의 죄가 다 용서받은 자이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허리를 동이고 서서 급하게 무교병을 구워 먹습니다.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의 집은 넘어가시는(유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백성이 편안히 잤겠습니까? 아닙니다. "혹시 문설주에 피를 빠뜨린 곳은 없는가" 살피며 두려운 마음으로 시끌벅적하게 그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집이 안전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들보다 더 거룩하고 진실해서가 아닙니다.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히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거룩함이 아니라 문설주에 발린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구원이 먼저이고, 정결은 구원에 이어지는 삶입니다. 바울은 그 순서를 고린도 교회에 적용합니다. "너희가 누룩을 내버려야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이미 무교병이니, 너희가 가지고 있던 누룩을 이제 정리하고 쓸어버리라." 정리하면, 우리가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깨끗해지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신앙생활이 괴롭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내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 맞나" 의심하고, 잘 산 날에는 은근히 어깨가 올라갑니다. 어느 쪽이든 시선이 자기 중심이 되어 버립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시선이 자기 중심이 되면 자기 죄를 숨기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꺼내는 순간 자기가 가진 자격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서가 바로 된 사람은 그것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셋째, 등불을 켜고 찾아서 쓸어내십시오. 본문에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라고 하는데, 슬그머니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찾은 누룩을 이 위치에서 저 위치로 옮기거나, 어떤 구석에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분들은 빨래감이 눈에 보이면 안 되니까 구석에 처박아 놓고 보이는 데만 깨끗하게 한 경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바울은 그렇게 옮기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완전히 그 자리에서 없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진 누룩은, 버리려는 시늉만 해서도 안 되고, 옮기거나 숨겨서도 안 됩니다. 완전히 내버리고 쓸어버릴 때 주 안에서 온전히 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런 자들을 끊어 내라고 하는 그 끊어 냄이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5절에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합니다. 이 문장의 마지막은 "구원"입니다. 바울이 엄한 조치를 내리는 목적은 그 사람을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권징이든 개인의 회개든, 성경이 말하는 것은 끊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유월절 양 되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심으로 문설주에 예수님의 피가 발려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모임인 교회도 구원받고 용서받고 "누룩 없는 자"라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등불을 켜고 그것을 찾아서 쓸어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진짜 문제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을 품고도 부풀어 있던 교만과 누룩이 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큰 죄가 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누룩도 발견하지 못하고 혹 있어도 그냥 안고 가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단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 등불을 켜고 다 쓸어내는 것입니다. 이 남은 한 주간, 등불을 켜고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던 작은 누룩은 무엇이었나"를 찾아 내버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아직 깨끗해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보혈의 피 아래 두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작은 것이라며 오히려 품어 온 것들을 오늘 밤 등불 앞에 꺼내 놓습니다. 옮기는 데 익숙한 저희에게 치워 버릴 수 있는, 쓸어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서로의 무너짐 앞에 어깨를 펴는 교만함이 아니라 함께 애통하고 함께 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끊어 내는 그 손이 결국은 살리는 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자유함을 얻은 우리에게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큰 죄가 터진 것만 문제가 아니라, 작은 누룩을 발견하고도 안고 가려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기억하십시오.
  • 2"죄를 다 정리한 다음에"가 아니라, 이미 누룩 없는 자로서 지금 그 누룩을 쓸어 내십시오.
  • 3이번 한 주간 등불을 켜고 "내가 아직 안고 있던 작은 누룩"을 찾아 완전히 내버리십시오.

기도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유월절 양 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아직 깨끗해지지 못했음에도 주님의 보혈 아래 두셨음을 감사합니다. 작은 것이라며 품어 온 것들을 오늘 밤 등불 앞에 꺼내 놓습니다. 옮기는 데 익숙한 저희에게 쓸어 낼 용기를 주옵소서. 서로의 무너짐 앞에 어깨를 펴는 교만이 아니라 함께 애통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끊어내는 손이 결국 살리는 손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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