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전날 저녁, 유대인 온 가족은 등불을 들고 집안 구석구석 — 부엌 천장, 항아리, 문지방 — 을 뒤져 부스러기(누룩)를 찾아내 태웁니다. 애굽을 떠나던 밤 반죽을 발효시킬 시간이 없어 무교병을 지고 나온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누룩 없는 떡이 해방의 증거라면, 누룩은 애굽에 남은 것들의 증거입니다. 바울은 그 등불을 들고 뒤질 곳이 집이 아니라 너희 교회라고 합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5:1) — 레위기 18장, 신명기 22장은 물론 로마법도 금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진짜 화가 난 것은 그 일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방치한 교회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5:2). '교만하여지다'는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는 뜻으로, 속은 비었는데 겉만 커지는 누룩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은혜의 사람이다, 정죄하지 않는다, 율법에서 자유하다"고 여겼지만, 거기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방치를 성숙과 관용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11절은 음행뿐 아니라 탐욕·우상숭배·모욕·술취함·속여 빼앗음도 누룩이라 합니다 — 누룩은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죄는 개인의 일로 끝나지 않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듯 공동체 전체로 번집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5:7). 상식으로는 누룩을 버려야 누룩 없는 자가 되는데, 바울은 너희가 이미 누룩 없는 자이니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합니다. "죄를 다 씻은 다음에 교회에 오겠다"는 것은 순서가 뒤집힌 것입니다. 출애굽의 밤, 이스라엘이 산 것은 그들이 더 거룩해서가 아니라 문설주에 발린 어린 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출 12장).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5:7) — 구원이 먼저이고, 정결은 그 구원에 이어지는 삶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깨끗해지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실패할 때마다 구원을 의심하고, 잘한 날엔 어깨가 올라가며, 결국 자기 죄를 숨기게 됩니다.
"내버리라"는 슬그머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치우는 것입니다. 찾은 누룩을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옮기거나 구석에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빨랫감을 구석에 짱박듯). 완전히 그 자리에서 쓸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끊어냄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5:5) — 문장의 끝은 구원입니다. 교회의 권징이든 개인의 회개든, 성경이 말하는 것은 끊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