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강해 · 2026.09.16

거룩이 더 힘이 셉니다

고린도전서 7:1-16 · 고린도전서 강해 · 2026.09.1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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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린도전서 7장 1절부터 16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거룩이 더 힘이 셉니다"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지난 시간 6장에 대해서 배웠는데, 6장의 내용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값을 주고 사셨다는 것을 우리들이 같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7장에서도 그 몸을 가지고 나와 가까운 사람과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다음 주가 되면 추석이라는 명절이 다가오는데, 나이 든 여자나 남자들이 고향 집, 또는 부모님에게 가는 것을 꺼려합니다. 왜 결혼을 여태까지 안 했느냐라고 하는 그러한 말 때문에 가족을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것이 어쩌면 요즘 그런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 성경이 어떻게 얘기하는가, 결혼과 이혼과 불신자와의 결혼 이렇게 세 가지를 나누어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몸은 서로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혼자 사는 사람도, 결혼하는 사람도 그것을 각각 은사라고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혼자 살아도 괜찮고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 은사라는 말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에 대해 쭉 얘기할 때 쓰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사는 사람도 그가 받은 각각의 은사이고, 결혼해서 사는 사람도 각각의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은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에게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서는, 나처럼 혼자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니 그것을 존중해야 된다고 얘기를 해줍니다.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미완성인가? 그렇지 아니합니다. 그러면 결혼하는 것은 더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혼자 사는 것도 좋은 것이고, 결혼하여 사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다만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결혼하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혼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8절부터 11절에서,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권하는 것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주"라고 말합니다. 결혼을 안 했거나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이 좋지만, 결혼한 부부가 이혼으로 갈 상황이 있지 않습니까. 본문에는 갈라서려는 자가 있다면 갈라서라고 되어 있지만, 먼저는 그렇게 하지 말고 화합할 방법을 힘써 찾으라고 합니다. 말을 들어주고 다시 화합할 방법을 모색해서, 서로 헤어지지 않고 나뉘어지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배경을 보면, 고린도 교인들이 갈라서겠다고 하는 것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 안에서 분쟁과 다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되어 있습니다.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인터넷 구독처럼, 마음에 안 들면 구독을 취소하듯 결혼과 이혼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요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말고 더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가능하면 헤어지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 화평하고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러한 형편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생각이나 사회 분위기나 현실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을 더럽히고 옮겨간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을 더 빨리 배우듯, 부정한 것이 깨끗한 곳으로 더 빨리 전파되고, 반대로 깨끗한 것이 부정한 것으로 전파되는 것은 더디고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배우자를 구할 때 믿는 사람을 구하려 하고,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내가 거룩을 옮기기보다 그 사람의 세상적인 것이 나에게 옮아올까 두려워 그런 만남과 결혼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방향이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이 거룩해진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거룩한 것이 더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한 것에 오염될까 봐 오히려 더 경계하고 두려워하지만, 사도 바울은 부정한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거룩함이 더 힘이 세고 강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히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내가 남편을 구원하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너의 거룩함을 통해 상대방이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는지 네가 어찌 다 알겠느냐, 그러나 너의 거룩함으로 인해 상대방도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사도 바울이 했을까요. 고린도 교회에 신앙이 좋은 여자가 있는데 남편은 신앙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이 여자와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예수를 믿으니 거룩하니 당신과 살 수 없습니다" 하며 이혼하거나 갈라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신앙이 좋은데 여자가 신앙이 없고, 그 남자를 무척 아끼고 좋아하는 경우, "너는 신앙이 없으니 교회를 안 다니니" 하며 매몰차게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예로,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디모데가 있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니게이고, 외조모는 로이스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는데 아버지는 헬라인, 곧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으로는 유대인끼리 결혼해야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했지만, 유니게는 이방 남자와 결혼하여 디모데를 낳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가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방 남자와 결혼한 그 여인을 통해 남편이 온전하게 세워지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디모데에게까지 선한 영향이 미쳐서, 결국 디모데가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고 후계자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꼭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도 그 자녀가 선한 영향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얘기했을까요.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보다 힘이 세어서 부정한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만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 나병 환자는 함께 생활할 수도 없고 성 밖, 진영 밖으로 쫓겨나 생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여주인공의 어머니와 그 딸이 나병에 걸려 마을 밖 동굴 같은 곳에 격리되어 살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병 환자에 대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병 환자를 만지려 하지 않았고,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부정한 질병이 자기에게 옮을까 두려워 나병 환자들을 꺼리고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 나병 환자를 가까이 하시고 만져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병 환자는 깨끗함을 받았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지신 거룩함과 능력이 부정하였던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거룩함과 능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부정한 것이 옮아올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너희의 거룩함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오히려 그 거룩함으로 그들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가진 거룩함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6장에서 배웠듯이, 우리 몸을 예수님께서 값을 주고 사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 힘이 크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정한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거룩한 아들을 세상 한복판, 우리 옆자리에 두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그 예수님을 힘입어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나타내며 살 수 있습니다. 만약 부정한 것이 옮아올까 두렵다면 우리는 산속에 가서, 격리되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세상 한복판에 두셨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고, 그 거룩한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먼저 보여주셨기에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배우자와 상대방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나와 함께하여 나를 통해 그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간혹 어떤 가정을 보면, 아내나 남편이 서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이렇게도 해라 저렇게도 해라, 이건 하면 안 된다 저건 하면 안 된다며 혼자의 노력과 수고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나를 통해 그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지, 내 힘으로 그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그가 다가오고 물어올 때 먼저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막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속에 거하시는 거룩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그에게도 흘러갈 수 있는 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것처럼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가, 결혼을 해야 하는가, 이혼을 해야 하는가, 믿지 않는 사람과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사도 바울의 답은 세 부분으로 나눴지만 결국 하나입니다. 각자 받은 은사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 사는 것도 흠이 아니요, 헤어지는 위기에 있는 것도 흠이 아니요, 그 자리에 머무르려는 것이 좋은 것이며,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도 흠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부정한 사람에게까지 손을 내미신 그 예수님을 우리가 믿고, 그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거룩함이 흘러가는 자리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거룩함이 시작되고 흘러가는 자리라는 것을 믿으시고, 이 한 주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결혼도 독신도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은사로 알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힘든 결혼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나가는 문이 아니라 화합의 길을 열어주시고, 혼자 믿는 집의 성도들에게는 죄책감과 조급함 대신 화평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부정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우리를 만져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오늘 우리를 통하여 우리 집으로, 우리 이웃에게로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지금 서 있는 자리를 성적표가 아니라 은사로 불러 보십시오. 혼자 사는 것도, 결혼해서 사는 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나누어 주신 몫입니다. 명절에 듣는 말보다 그 한 문장이 더 힘이 셉니다.
  • 2결혼이 힘든 분은 나가는 문을 보기 전에 화합할 길을 먼저 찾으십시오. 미루어 둔 대화 하나를 이번 주에 하되, 이기려는 대화가 아니라 듣는 대화로 하십시오. 그런 형편에 있는 이웃에게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언해 주십시오.
  • 3믿지 않는 가족 한 사람을 정하십시오. 설득해서 바꾸려 하지 말고, 그가 물어 올 때 막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결혼도 독신도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은사인 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힘든 결혼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나가는 문이 아니라 화합의 길을 열어 주시고, 혼자 믿는 집의 성도들에게는 죄책감과 조급함 대신 화평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부정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우리를 만져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이 오늘 우리를 통하여 우리 집으로, 우리 이웃에게로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가 거룩함이 시작되고 흘러가는 자리인 줄 믿고 이 한 주간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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