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강해 · 2026.10.21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19-27 · 고린도전서 수요강해 · 2026.10.21 조회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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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수요예배를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도 바울이 자기에게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말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가 무엇을 위해서 스스로 종이 되는 것까지 감수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면 그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합니다. 직장이든 학교든 모임이든, 그 환경에 맞는 규칙들을 배우고 습득합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임의 규칙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단체 속에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 모습으로 내 자유를 포기하고 오히려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9장 1절에서는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했고, 19절에서도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하며 자유함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버리고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종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순종하며 낮아지는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종이 된 것입니다. 만약 억지로 종이 되려고 했다면 그것은 매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함으로 더 큰 열매를 얻게 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명을 받았다, 직분을 받았다고 할 때 억지로 하면 매임이 됩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직분을 받지만, 목회자도 사명을 억지로 감당하면 그것은 매임이요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면 더 큰 힘을 얻습니다. 운동이든 공부든 목표를 정해 놓고 할 때,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즐긴다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일을 하고 사명과 직분을 감당할 때에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 원리를 어디서 배웠을까요?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를 보면, 그는 예수님에게서 이 원리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헤아리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위치를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셨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를 맺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도 억지로 하는 매임이 아니라 자유함으로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스스로 종이 되어 여러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이 말씀합니다. 유대인, 율법 아래 있는 자,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는 자, 약한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구절 가운데 공통적으로 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얻고자 함이라」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되니 이는 유대인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되니 이는 그들을 얻고자 함이요,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니 이는 약한 자를 얻고자 함입니다. 바울의 가장 큰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을 얻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도 저런 모습으로도, 이런 환경에서도 저런 환경에서도 처할 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 마지막 목표는 복음으로 그들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 모양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목표는 하나, 복음으로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회당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덴에서는 우상을 섬기며 제사 드리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너희가 섬기는 신에게 드리는 제단이 있구나 하며 말문을 엽니다. 회당에서는 말씀으로, 아덴에서는 제단으로 시작했지만, 바울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바울은 여러 환경 속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서울에 올라가는 길이 꼭 경부고속도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호남고속도로도 있고 중부고속도로도 있고, 빙 돌아서 동해안으로 해서 양양고속도로도 있습니다. 갈래길은 여러 가지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서울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여러 방법을 쓰고 여러 가르침을 주고 여러 환경에 처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증거하고 그 복음의 능력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한 가지 예를 듭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운동 경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국체전 같은 경기가 있었는데, 오늘 본문이 이 경기를 인용합니다. 경기하는 선수는 목표를 정해 놓으면 그 목표를 위하여 절제합니다. 달리기 선수가 대회에 참가해 1등을 하려고 절제합니다. 그것은 억지로 하는 절제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절제입니다. 단지 밥을 굶고 힘든 것을 참아서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있기 때문에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제라고 하는 것은 참는 힘이 아니라, 목표가 있는 사람이 하는 거절입니다. 식단 조절을 한다고 합시다. 그냥 밥을 굶고 참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밥을 먹지 않기로 거절하는 것, 그것이 절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절제의 힘도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 절제도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절제하고 거절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내 속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의 삶과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고 인도하고 이끄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에 사로잡힌 자,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 늘 성령님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자유도 포기하고 권리도 포기하고 종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하고 연합했습니다. 때로는 핍박도 당하고 고통도 당했지만,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행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그는 거절할 수도 있었고 절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달려갈 때에 그 경주의 끝이 있다고 오늘 본문이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그 경주의 끝에 누가 계신지 말씀해 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의 적용

  • 1지금 맡은 직분이나 사명 가운데 억지로 하고 있어 매임이 된 일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나를 위해 스스로 종이 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이번 주 그 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다시 붙들어 보십시오.
  • 2복음으로 얻고 싶은 한 사람을 정하십시오. 그 사람이 있는 자리와 형편에 나를 맞추어 다가갈 길 하나를 찾되, 목표는 그 사람을 복음으로 얻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 3목표 때문에 거절해야 할 것 하나를 정해 보십시오. 내 의지로 버티려 하지 말고 성령님께 절제의 열매를 구하며, 경주의 끝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맡은 사명을 억지로 하는 매임이 아니라 자원하는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 자리에서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되 끝내 복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얻게 하시고, 목표를 위해 거절할 힘을 성령님께서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경주의 끝에 계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