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이 창조의 전체 그림이라면, 2장은 그 창조를 사람과 동산에 초점을 맞추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사람은 스스로 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시고 그분의 생기로 살아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엘리야, 엘리사, 그리고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부릅니다(딤전 6:11).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끄러움 없는 관계여야 합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 내게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시 139:23, 51:10). 오늘 나와 하나님 사이에 부끄러운 것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면 고백하고 회개하여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2:15). 땀 흘리는 수고의 고됨은 타락의 결과지만(3:17-19), 일 자체는 타락 이전 에덴에서부터 주어진 선하고 존귀한 소명입니다. 직업을 가지고 그 일에,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힘써 수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고(1:3), 그 형상을 입은 사람의 말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오셔서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2:19).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의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형상을 입은 사람에게 이름 짓고 다스리는 말의 힘을 주셨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처럼, 그 힘으로 오늘 창조적이고 위로가 되며 긍정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좋았더라" 하신 하나님이 딱 하나 "좋지 아니하니"라고 하신 것이 사람이 혼자 있는 것입니다(2:18).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지어 이끌어 주십니다. 사람이 스스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십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25) — 하나님과의 관계처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속이지 않고 거짓 없는 부끄러움 없는 관계여야 합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