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마므레를 떠나 그랄에 거류하다가, 25년 전 애굽에서 저질렀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사라를 누이라 하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갑니다. 이삭의 출생을 알리는 21장 바로 앞에서, 약속의 씨가 담길 태가 이방 왕궁으로 넘어가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장의 중심은 아브라함의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 위에 개입하시고 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할례 언약을 받았고(17장),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과 대화했고(18장), 소돔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그가 떠난 곳 마므레는 제단을 쌓은 곳, 하나님이 찾아오신 곳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떠난 발걸음이 판단이 흐려지는 첫 신호였고, 그랄은 25년 전 실패한 곳이었습니다. 더 깊이 볼 것은 13절입니다. "이 거짓말은 급조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떠나던 첫날부터 준비된 각본이었습니다"(20:13). 그가 그 음모에 붙인 이름이 '헤세드'(은혜) —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의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죄가 가장 위험한 순간은 죄가 죄로 불릴 때가 아니라 죄가 경건한 이름을 얻을 때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정의를 행한다고,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20:7)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자리인데, 그 사람이 방금 아내를 누이라 속인 자였습니다. 성경은 이 단어를 선포가 아니라 기도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직접 고치실 수 있었지만 굳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25년 동안 자기 태가 열리지 않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그랄 여인들의 닫힌 태를 위해 기도하니 하나님이 그들을 고치십니다(20:17). 그리고 바로 다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 사라가 임신하고"(21:1-2). 욥도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의 곤경이 돌이켜졌습니다(욥 42:10). 내 문제가 풀린 다음에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서 내 문제도 풀립니다. 예수님도 지금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히 7:25).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