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 광야로 피한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며 지냅니다. 늘 양 떼를 몰고 다니던 그 길에서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타서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보고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사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시며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하고 여쭙고,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고 대답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니다.
모세가 가까이 오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그 땅이 원래부터 거룩한 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날마다 양 떼를 몰고 다니던 평범한 길이었습니다. 그곳이 거룩한 땅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주시는 것입니다.
깨끗이 씻고 단장한다고, 건물을 화려하게 짓는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셔야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됩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처럼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말씀도 우리의 단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할 때 하나님은 그 산에 숫양을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곳에 가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건져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하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떠밀어 보내신 뒤에 뒤따라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가 계시고 먼저 일하시고, 그 자리로 사명자를 부르십니다. 광야 길에서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늘 이스라엘 앞서갔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이나 직분을 받을 때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준비해 두셨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여쭙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달아났던 모세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의 자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보냄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보내시는 분이 누구신가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고 당신을 알려 주십니다.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시고,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고 하던 사두개인들에게 바로 이 떨기나무 장면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막 12:26-2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때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죽음 너머까지 그 언약을 붙들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부활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