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장에서 마실 물이 없어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던 백성이, 16장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물음 앞에 섭니다. 신 광야에 이른 이스라엘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3절) 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4절) 하시며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백성은 아침마다 하루에 먹을 만큼 거두어야 했고,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 둔 것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16-20절).
이 본문에는 「원망」이라는 단어가 거듭 나옵니다. 그런데 그 단어와 짝을 이루어 본문이 되풀이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말씀입니다(7-9, 12절).
하나님은 백성의 원망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원망까지 다 들으시고 하늘의 양식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감사와 기쁨만 있지 않습니다. 원망 섞인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까지 듣고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는 방식은 하루에 하루치였습니다. 모아 두거나 쌓아 두게 하지 않으시고, 오늘 하루치를 먹고 다음 날 또 하루치를 받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은 그 뜻을 이렇게 풀어 줍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 8:3). 오늘 하루치를 주신 하나님이 내일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도록, 하나님은 광야에서 백성을 시험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믿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일 만나가 그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 때문에 아침까지 남겨 두었고, 남긴 것은 썩었습니다. 여섯째 날 이틀치를 거두라 하셨는데도, 일곱째 날 거두러 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28절) 하고 물으십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도 오늘의 일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염려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마 6: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 증거판 앞에 두고 대대로 간수하게 하셨습니다(33-34절). 광야 사십 년 동안 날마다 백성을 먹이시고 지키신 하나님을 후손에게 알리시려는 방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이 만나를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요 6:32). 그리고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 6:51)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은 자기 살을 내어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광야의 만나가 날마다 내렸듯이, 우리는 오늘도 그 예수님께 나아가 생명을 얻고 예수님을 닮아 자라 갑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