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 뒤에 하나님은 백성에게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 말씀이 덧붙습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3절). 선물은 그대로인데 그 땅에 주인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25장에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25:8) 하시며 백성 가운데 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 안에 거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직 성막이 세워지기 전, 진 밖에 장막을 치고 회막이라 불렀습니다(7절). 하나님은 그곳에서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11절) 모세와 말씀하셨지만,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습니다(20절).
모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15절). 그 이유도 말합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16절).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달랐던 것은 땅을 얻어서도, 율법을 받아서도, 숫자가 많아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신다는 그 사실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반대로 기도합니다. 원하던 회사, 원하던 응답, 원하던 집, 원하는 사람만 주시면 된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이루어져도 주님이 빠지면 그곳은 빈집입니다. 응답도 결과도 좋은 것도 있지만 주인이 없는 집입니다. 하나님 없는 약속의 땅은 복이 아니고, 하나님 없는 응답도 복이 아닙니다. 모세가 구한 것은 복도 땅도 아니었고 오직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15절의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또 구합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18절). 하나님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19절) 하시고, 모세를 반석 틈에 두시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22절) 지나가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등을 봅니다. 하나님이 손으로 가리신 까닭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20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손은 모세를 지켜 주시는 손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 달라고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셔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그 손으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구나, 역사해 주셨구나."
모세는 하나님의 등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요 1:14).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진 밖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