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는 주전 146년 로마에 파괴되었다가 주전 44년 재건된 도시로, 물질적 번영과 함께 신분 경쟁, 웅변술과 수사학에 대한 열광, "누가 더 지혜로운가"를 겨루는 문화가 자란 곳입니다. 그 도시의 경쟁 문화가 교회 안에 스며들어, 신자들이 좋아하는 설교자를 중심으로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1:12) 파벌을 이루었습니다.
바울은 다수결 투표나 조직 개편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1:10) 호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1:13) — 답이 정해진 세 질문으로, 사람을 그리스도의 자리에 놓는 우상숭배적 태도를 지적합니다. 우상숭배는 나무나 짐승 형상만이 아닙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 내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 어떤 설교자나 은사자를 십자가보다 더 품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설교자를 언변과 지혜로움으로 평가했습니다. 바울은 그 기준 자체를 뒤집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1:20).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 십자가는 로마 세계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처형 도구였고, "신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선포는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 이방인에게 미련한 것이었습니다(1:23). 바울은 지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배격합니다(바벨탑처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1:25) — 이 역설은 논리가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의 조명으로만 받아들여집니다(2:6-16).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1:26). 고린도 교회는 똑똑한 사람도, 부자도, 학벌 있는 자도 없는데 분쟁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자를 부르신 것은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29) —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임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1:30).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1:31, 렘 9:23-24).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