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강해 · 2026.09.30

흐트러짐 없이

고린도전서 7:25-40 · 고린도전서 강해 · 2026.09.30

본문 개관

지난 시간 고린도전서 7장 24절에서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25절부터 바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약혼한 사람들, 남편을 여읜 사람들에게로 이야기를 옮깁니다. 7장 전체가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 약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례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 바울은 결혼을 하라고 떠밀지도 않고, 하지 말라고 말리지도 않습니다. 25절에서 바울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의견을 말하노니"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38절에서는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은 혼자 지내는 편을 권하지만, 결혼도 잘하는 일이라는 말을 거두지 않습니다. 두 길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이고, 각 사람이 받은 은사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7절).

결혼하느냐 마느냐 그 이면에 바울이 정말 보여 주려는 것이 있습니다. 35절입니다.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결혼한 사람이든 혼자인 사람이든,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이 본문의 중심입니다.

명절이 막 지나갔습니다. 기쁘게 보낸 분들도 계시고, 불편하게 보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이런저런 말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지 모릅니다. 바울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

1. 힘을 빼십시오

29절에서 바울은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라고 말합니다. 26절의 "임박한 환난"과 함께 이 말이 당시 고린도가 겪던 어려움을 가리키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가까웠다는 뜻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마지막 때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두지 말라거나,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말라거나, 장사와 세상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결혼한 사람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하고,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고 이미 말했습니다(3, 10절). 문제는 그 일들에 내 마음이 전부 가 있을 때입니다. 결혼에, 슬픔과 기쁨에, 사고파는 일에, 세상 물건에 마음을 통째로 걸어 두었다면 꽉 쥐고 있던 그 손에서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31절이 그 까닭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사고파는 일은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기쁜 일도 언젠가 멈춥니다.

며칠 전에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저도 젊고 잘생겨 보였고, 아내도 그랬습니다. 요즘 모습과 나란히 놓고 보니 세상의 외형은 정말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붙잡아도 이 외형은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가장 꽉 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외모든 물질이든 세상의 즐거움이든, 바울은 그것을 내다 버리라고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온 마음을 거는 데서 힘을 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붙들기 전에 지나가지 않는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손에서 힘을 뺄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것을 지나가는 것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주님께 마음을 둘 수 있습니다.

2. 마음이 나뉩니다

32절부터 바울은 결혼한 사람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염려가 있다고 말합니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염려하고, 장가간 자는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염려하여 마음이 갈라집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집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고, 시집간 자는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배우자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은 죄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이 혼자인 사람보다 못한 신자라는 말도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의 도리이고, 에베소서 5장은 그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추어 가르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사실 그대로의 형편입니다. 결혼한 사람의 마음에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거기에 배우자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과 가정을 돌보는 염려가 함께 있어서 마음이 여러 갈래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35절에서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올무를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위해서라고 덧붙입니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바울의 관심은 어느 자리에 있든 마음이 갈라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혼자인 사람도 마음이 흩어질 수 있고, 결혼한 사람도 주님을 향한 한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혼하는 것도 좋고 결혼하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바울이 혼자 지내는 것을 「더」 낫다고 한 것은 그 신분이 더 거룩해서가 아니라, 임박한 환난(26절) 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섬기게 하려는(35절) 목회적 권면이고, 그것도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7절).

오늘 우리 마음은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 있습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마음이 더 큽니까, 아니면 일과 가정, 결혼 여부를 둘러싼 이런저런 염려에 마음이 더 큽니까.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들르십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마리아를 시켜 자기를 돕게 해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섬김을 나무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르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짚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말씀 앞에 앉는 것을 「한 가지 필요한 좋은 편」이라 하셨습니다. 누가가 마르다의 「분주함」에 쓴 말과 바울이 「흐트러짐 없이」에 쓴 말은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흐트러짐 없는 마음은 말씀 앞에 앉는 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좋은 편이라면, 우리도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런 염려 저런 염려가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흐트러짐 없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3.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32절의 이 물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의 물음이 아닙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우리는 이번 주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월요일이 되고 하루 이틀 지나면 어떻습니까. 붙잡고 있던 그 결심을 어느새 놓아 버리고 한 주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애쓰고 수고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붙잡아야 할 것을 자꾸 놓으려는 본성을 우리 안에서 봅니다. 가정을 돌보느라 마음이 여러 갈래로 쓰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모든 자리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던 마음을 우리가 자꾸 놓아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서 그리스도인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성령께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으로 우리 마음을 붙드시고, 육체는 그 자리에서 자꾸 손을 놓게 합니다. 이 싸움은 믿는 사람 안에서 날마다 일어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보아야 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한 번도 놓치지 않으신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되셨습니까. 한 번도 혼자이신 적 없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시며 버림받는 자리에 서셨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날마다 마음이 흩어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혼자 되는 그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 홀로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기에 예수님 앞에 흩어진 마음을 그대로 내어놓고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자신이 떠나가야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6:7). 그 성령께서 흐트러진 우리 마음을 모아 주십니다. 나뉘었던 마음을 다시 주님께로 모아 주십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을 붙드는 것은 내 결심과 힘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혼자 남겨지지 않고, 성령께서 그 마음을 붙들어 주십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결혼한 자리에서도, 혼자인 자리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남은 한 주간 우리 마음이 나뉘고 흩어지고 약해질 때에도, 성령께서 분명히 모아 주시고 든든하게 다시 세워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적용

  • 1지금 내 마음이 가장 꽉 쥐고 있는 것 하나를 떠올리십시오. 외모든 물질이든 관계든, 그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걸어 둔 마음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는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 2결혼한 자리와 혼자인 자리를 두고 서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결혼하지 않은 지체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이 없는지, 결혼한 지체의 분주함을 믿음 없음으로 여기지 않는지 돌아보십시오. 두 길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이고, 물어야 할 것은 마음이 주님께 있느냐입니다.
  • 3주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던 결심을 놓쳐 버린 날,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먼저 예수님 앞에 흩어진 마음을 내어놓으십시오. 그리고 "성령님, 나뉜 제 마음을 주님께로 모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의 외형은 다 지나가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나가는 것에 우리 마음을 다 내어 주지 않게 하시고, 결혼한 자리든 혼자인 자리든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흩어지고 나뉘는 우리 마음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성령께서 다시 주님께로 모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