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오래 하면 눈 감고도 가는 길이라며 마음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는 바로 그런 때에 납니다. 오늘 본문은 익숙한 것에 방심할 때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며 지식도 많으니, 우상의 신전에 차렸던 음식을 먹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은혜에 익숙해진 고린도 교인들에게 광야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반복되는 말은 「다」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구름 아래에 있었고, 다 바다 가운데로 지났고,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2절), 다 같은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그들이 모세의 인도 아래 하나님의 백성에 속했다는 표지입니다. 그 표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저절로 구원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이어지는 5절의 경고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모두가 은혜를 입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자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지금 은혜 안에 살고 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10년 전에 받은 은혜와 은사로 오늘을 살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세례와 주의 만찬과 지식을 한번 들어 두면 끝까지 보장받는 보험처럼 여겼습니다. 바울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6절). 우상 숭배와 음행, 주님을 시험함과 원망으로 넘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본보기입니다.
본보기는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의 틀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절). 하나님은 무거운 경고만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우쳐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려고 이 일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거울삼아 나를 바로잡는 타산지석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12절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조심하라는 것은 사고를 치지 말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할 자리를 건너뛰고, 말씀 앞에 멈춰야 할 때 그냥 지나치는 것, 이전에 해 봤으니까 하고 묻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태복음 26:33)라고 고백했지만 그날 밤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보았던 엘리야도 이세벨의 한마디에 도망쳐 죽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시고 다시 찾아가 세우셨고,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시며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 광야의 이스라엘은 거의 다 넘어졌지만, 우리 주님은 광야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마태복음 4장).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브리서 2:18). 먼저 이기신 그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도 우상과 음행과 교만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