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16장 7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광야에서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라의 여종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피해 광야로 도망합니다. 아이를 밴 몸으로 오갈 데 없이, 자기 고향 애굽으로 가는 술 길 곁 샘물 곁에 주저앉아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녀를 찾아옵니다. 사자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라는 명령과 함께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이에 하갈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엘 로이, 곧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언약의 백성, 계보 바깥에 있던 이방 여인에게 주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선언입니다.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아무도 찾지 않을 때에 하나님이 먼저 찾아 주셨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안에서도, 사라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녀가 광야로 도망친 것은 스스로 모든 관계에서 밀려났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주인 아브라함의 씨를 배어 임신했지만, 그녀는 그 아이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연약한 그녀를 찾아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언제나 사람이 먼저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찾아오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찾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시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 은혜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찾아오시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사자는 그녀를 "사래의 여종"이라 부르면서 동시에 "하갈"이라는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것은 그녀의 신분과 정체성을 함께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신 것은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내 신분과 처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멀리서 상황만 파악하는 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과 삶의 자리까지 아시고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십니다. 유대인이라면 상종하지 아니한 사마리아 사람, 그것도 다섯 번 결혼에 실패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거시고, 그녀의 삶의 내막을 다 아시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하갈이 광야 샘물 곁에서 만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이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 곁에서 그리스도의 얼굴로 만났습니다. 두 여인 모두 종교적 정통성 밖에 있었고, 두 사건 모두 물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녀들을 찾아 주시고 만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가 있습니다. 그는 세리장으로서 동족에게 손가락질을 받았고, 키가 작아 무리에 섞여 있지도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 숨듯이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멈추셔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라고 부르십니다(눅 19:5). 하갈을 부르신 것처럼, 예수님은 숨어 있던 자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시며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찾아오시고 살펴 주신 하나님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통해 잃어버린 자를 찾고 숨어 있는 자를 찾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감찰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언어입니다. 하갈, 사마리아 여인, 삭개오 세 사람 모두 사회적으로 낮아진 자리에 있었고, 세 사람 모두 하나님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습니다. "살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그들에게 항상 있다는 뜻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들추어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광야와 나무 위의 자리까지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고 찾아오신 것은 "너 잘못했지? 너 실수했지? 너 실패했지?" 하며 죄를 들추고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있는 자리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광야 같은 곳이라고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성도를 오늘 찾아가실 것입니다. 하갈처럼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내가 뵈었습니다"라는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이름과 사정을 정확히 아시고 부르시는 분이시기에, 내가 숨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나를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우리 주변의 약한 이웃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만 은혜를 받아 가득 채워 고인 채 썩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광야에 있던 하갈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을,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처럼 오늘 나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스스로 숨기고 싶었던 자리까지 이미 아시고 부르시는 주님 앞에 오늘도 정직하게 나아가게 하시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그들에게도 흘려보낼 수 있는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