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21장 22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보면서 "에셀나무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본문 22절에서 이방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먼저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곧 "너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 "내가 복이다"라고 말하지 아니하여도, 그의 조용한 행동과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이방 왕까지 감동하게 했습니다.
믿음은 드러내고 알려지게 하는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려 애쓰지 아니하여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참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애쓰고 나타내려 하고 보이려 하는 믿음이 아니라, 조용한 모습과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참 믿음이 드러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습니다. 이 에셀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소금기 가득한 반건조 지대에서 살아남는 상록수입니다. 잎이 1.5밀리미터 정도의 비늘 모양이라 수분을 거의 잃지 아니하고, 사막과 광야 같은 곳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사시사철 잎을 떨구지 아니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이미 100세가 훨씬 넘는 노인이었습니다. 이 에셀나무가 온전히 자라서 오랜 세월 그늘을 드리우며 서 있을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왜 이 나무를 심었을까요? 나무가 자라 그늘을 드리우면 그곳에서 자신이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후대, 그의 자손들을 위해서 심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심은 것은 자기가 앉을 그늘이 아니라 후손이 앉을 자리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체입니다. 내 눈으로 결실을 확인할 수 없어도 심는 것, 내가 거두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씨를 뿌리는 것, 그것이 믿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평생 다 누리지 못할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그가 이 땅에서 자기 몫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들의 몫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에셀나무는 구약에서 세 번 등장합니다. 창세기 21장 33절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는 장면, 사무엘상 22장 6절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 에셀나무 아래 앉아 신하를 거느리는 장면, 사무엘상 31장 13절에 사울과 아들들의 뼈를 야베스의 에셀나무 아래 장사한 장면입니다. 곧 나무를 심는 곳, 왕이 앉아 다스리는 자리, 사람이 묻힌 자리 — 그곳에서 에셀나무가 등장합니다. 이 나무는 단순한 정원수가 아니라 공동체가 모이는 좌표를 가리킵니다. 한 사람이 심은 나무가 나중에는 공동체를 다스리는 자리가 되고, 한 사람의 일생이 마치는 자리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심을 때 그는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그루를 심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 한 그루를 여러 세대가 자리 잡는 곳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서 히브리 기자는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자신이 심은 에셀의 그늘도, 자신에게 약속된 땅의 완전한 소유도 자기 생전에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먼 바다에서 도착할 항구를 보고 손을 흔들며 미리 기뻐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과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4장 3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언제나 같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에셀을 심었을 때 그는 거두는 자가 아니라 심는 자였습니다. 그는 심었지만, 결국 그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을 심었다면, 그 열매를 우리는 어쩌면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유산, 이 교회, 이 말씀, 이 은혜는 이전에 누군가가 심었던 신앙의 열매를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그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가 이 신앙과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심는 믿음의 모습을, 우리 후손 중 누군가가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심는 것과 거두는 것 사이,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게 하시는 분은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우리도, 우리 전에 심었던 믿음의 선조들의 열매를 받았듯이,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거두게 될 그 믿음의 나무를 오늘 심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믿음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는 보이는 열매만 쫓으며 조급해하지는 아니하였습니까? 당장의 결실이 없어도 오늘 내가 심어야 할 것을 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약속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던 그 믿음의 시야를 더하여 주시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그늘이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순종이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 조용히 믿음을 심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영원하신 주님의 시간표를 신뢰하며 오늘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