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 · 2026.08.11

여호와 이레, 산에 오르기 전에 이미 계셨던 분

창세기 22:1-14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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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창세기 22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 이레, 산에 오르기 전에 이미 계셨던 분"이라는 제목으로 새벽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이레"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흔히 "막다른 데 가면 하나님이 어떻게든 해 주신다"라는 의미로 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끝까지 살펴보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러면 수풀에 걸린 그 숫양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가? 이 숫양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없던 곳에서 만들어 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늦지 않게 도착하셔서 이삭을 구하고 급히 숫양을 준비하신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그 산에 먼저 계셨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22장의 내용입니다.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 도망갈 구멍을 다 막으셨습니다. 2절의 명령을 히브리어로 보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딱 꼬집어 말씀하십니다.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주지 아니하고 점점 좁혀 가며 "네 아들 이삭을 바쳐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생각납니다. 요나도 여기저기 도망가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망갈 길을 만들어 두지 아니하시고 결국 그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도 다른 도망갈 길, 다른 대신할 길을 만들어 두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신명기 8장 16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몰라서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로 알게 하시려고 시험하십니다.

둘째, 견뎌 내는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사흘 길을 걸어갑니다. 본문 3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라고 기록합니다. 아마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그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을 정리하고 나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정리하기도 전에 순종했습니다. 이 문장은 한 문장이지만 그 기간은 사흘이었습니다. 이 사흘 동안 아브라함은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길을 걷고, 아들과 함께 아침·점심·저녁을 먹으며 사흘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도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 사흘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19절에 "그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함께 온 종들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말합니다. 아들을 죽이고 혼자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반드시 살리실 것을 믿고 "우리가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흘 동안 아브라함이 붙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아들을 통해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후손을 많게 하시겠다"라는 약속을 붙들고 나아갔습니다. 사흘 고민의 결론은 "하나님은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다"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삶에서 겪는 일들 가운데 고민하고 걱정하고 근심합니다. 그 근심의 기간이 길든 짧든,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신실하다"라는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 이레의 진짜 뜻이 무엇인가입니다. 9절에서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결박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제사나 성경의 제사에서 번제로 드리는 제물을 결박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삭을 결박했다고 기록합니다. 왜 아브라함은 아들을 결박했을까요? 이삭이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를 때는 아마 청년, 10대 후반 정도로 생각됩니다.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다면 아버지를 충분히 밀쳐내고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아버지의 결박에 그대로 묶여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 이삭도 아버지의 뜻에 동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귀하고 이삭의 믿음도 귀합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고, 그 아들 이삭도 아버지의 뜻에 동의했으며, 그리스도께서도 그것을 거부하지 아니하시고 순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에 두고 순종할 수 있는 모습이 있습니까? 13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숫양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시며 그를 멈추게 하시고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아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것은 한 번의 제사로 끝나는 과거형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실 것이라는 미래형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계셔서 예비해 두셨습니다.

역대하 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산에 솔로몬이 성전을 세웁니다. 그곳에서 계속 번제와 제사가 드려집니다. 이 번제는 계속 드려졌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히 13:12).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갑자기 나타나셔서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먼저 계셔서 예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오르기 전부터 하나님이 먼저 그 산에 계셨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은혜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은혜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은혜를 우리가 얻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미 준비된 은혜를 받은 자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직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그 사흘 동안 언약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그 기간이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일 년이든,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주시겠다"라는 말씀입니다. 그 언약을 붙들고 나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위하여 멈추지 아니하셨던 하나님의 손을 기억합니다. 나 대신 드려지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다시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시험하시는 이유가 나를 무너뜨림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어 세우시는 것을 믿게 하시고, 응답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산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그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나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1은혜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것임을 알고, 준비된 은혜를 받은 자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 2응답이 보이지 않는 "사흘"의 길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나아가십시오.
  • 3하나님의 명령 앞에 가장 아끼는 것까지 내어드릴 수 있는 순종을 구하십시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나를 위하여 멈추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손을 기억합니다. 나 대신 드려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게 하시고, 나를 시험하시는 이유가 나를 무너뜨림이 아니라 세우심임을 믿게 하옵소서. 응답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걷게 하시고, 산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계신 하나님이 오늘 하루 나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