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호와 이레"를 "막다른 데서 하나님이 어떻게든 해 주신다"는 뜻으로 자주 씁니다. 그러나 본문을 끝까지 보면 질문이 생깁니다. 수풀에 걸린 그 숫양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가? 하나님이 늦지 않게 도착해 급히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산에 먼저 계셨던 것입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22:2) — 하나님은 대신할 길을 만들어 주지 않으시고 딱 꼬집어 말씀하십니다. 요나에게도 도망갈 길을 두지 않으셨듯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22:1) 하셨는데, 이 시험은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하나님은 몰라서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알게 하시려고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22:3) —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사흘이라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사흘 동안 고민하며 내린 결론을 히브리서는 "그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도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9)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우리가 … 예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22:5)고 말한 것입니다. 사흘 고민의 결론은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근심이 길든 짧든, 그 결론도 이것이어야 합니다.
이삭을 결박했다(22:9)는 기록이 특이합니다. 번제물을 묶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삭은 이미 십 대 후반의 청년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동의하여 묶여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롬 8:32) — 하나님도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 아들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22:14)는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먼저 계셔서 준비해 두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에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고(대하 3:1) 그곳에서 번제가 계속 드려졌으며,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히 13:12) 십자가의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