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30장 22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으로 "듣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새벽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헬이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언니 레아에게는 아들이 넷이나 있는데 자신에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절박함이 얼마나 컸는지 우리는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0장은 그 절박함이 만들어 낸 자매의 경쟁과 다툼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자세히 보면, 정작 이야기의 중심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첫째, 인간의 방법입니다. 라헬은 자기 몸종 빌하를 통하여 아들을 얻습니다. 이에 경쟁하듯이 레아는 지지 않고 자기 몸종 실바를 통해 맞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합환채까지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임신에 효험이 있다고 믿던 식물입니다. 두 자매는 이 합환채를 두고도 협상을 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봅니다. 성경은 이 방법들을 성공의 비결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매 사이에 반목만 깊어 가는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둘째,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열어 주셨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계속 반복되는 주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 6절에서도, 17절에서도, 22절에서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사람의 책략과 다툼이 이야기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생명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라도, 리브가도, 라헬도 같은 순서를 밟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고 계심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셋째, 신앙의 응답입니다. 아들을 얻은 라헬은 그 이름을 요셉이라 짓습니다. "더하다"라는 뜻이며,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라는 의미입니다. 오랜 부끄러움과 기다림 끝에 터져 나온 이 고백은,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요셉이 훗날 애굽에서 온 가족을 살리는 구원자로 쓰임받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그 순간의 응답을 넘어 훨씬 크신 구속사적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방법은 신약에서도 보입니다. 자녀가 없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낮은 자 마리아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결핍 곧 죄와 죽음의 문제를 여셨습니다. 라헬의 태를 여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여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조급함으로 스스로 길을 만들려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릴 때 진짜 열리는 은혜가 있음을 꼭 기억하십시오.
결론을 맺습니다. 첫째, 지금 내가 조급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조급함과 성급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고 기다리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응답이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은 침묵 중에서도 듣고 기억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나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바라보는 소망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라헬처럼 조급함과 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만들려 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다툼과 술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여신 것을 오늘 다시 바라봅니다. 우리의 결핍이 더딘 것처럼 보여도 주님의 때를 신뢰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가장 큰 것을 열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조급함이 아닌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