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38장 24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제목으로 이 새벽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셉은 은 20개에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내용이 3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갑자기 시선을 바꾸어, 형 유다의 집안으로 그 시선을 옮깁니다. 거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예배도 제단도 아닙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 두 아들의 죽음, 며느리를 속인 시아버지, 창녀로 오해한 동침, 그리고 "끌어내어 불사르라"는 무서운 명령이 이 창세기 3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 이 장면을 남겼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이름이 마태복음 1장 3절 예수님의 족보에 그대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38장은 우리가 가장 덮고 싶은 자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고 계시는가를 보여 주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내려간 사람"입니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인데, 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떠나 내려가서." 여기서 "내려간다"는 말은 실제로 내리막길이기도 하지만, 지역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 자리에서 발을 빼고 세상 쪽으로 옮겨 가는 걸음을 그릴 때에도 "내려간다"고 표현합니다.
유다는 동생을 팔자고 먼저 말한 사람입니다. 37장 26-27절에 보면, 상인들이 지나갈 때 구덩이에 죽게 하지 말고 동생을 팔자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형제의 곁을 떠납니다.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은 대개 자리를 옮깁니다. 그 자리가 불편하면 사람을 바꾸기도 하고 동네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리를 옮긴다고 지나온 일이 거기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유다는 내려갔지만, 그가 덮고 온 것은 그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네 아버지 집에 가서 과부로 지내라." 말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다의 속마음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셀라도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말은 "가서 기다리라"지만, 속마음은 형사취수의 제도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줄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14절에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라고 기록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유다는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미뤄 두었습니다. 거절은 상대가 다음 길을 찾게 하지만, 미룸은 상대를 그 자리에 묶어 둡니다. 다말은 몇 해를 과부의 옷을 입고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뤄 둔 일이 있다면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드러난 자리에서 시작된 회복"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데, 석 달 뒤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유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24절에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합니다. 자기 죄에는 몇 해를 침묵하던 사람이 남의 일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말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어놓습니다. 오늘로 치면 신분증과 같은 것입니다. 유다는 그것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26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히브리어로 "차드카 밈멘니"인데, 다말이 흠 없이 의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보다"라는 비교의 말이 붙습니다. 언약 가문의 후손이 끊기지 않게 하려던 며느리와, 그 의무를 알면서도 미룬 자기를 나란히 놓고 보니 자기가 아래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향해, 그 위치와 자격을 내려놓고 "네가 옳다, 네가 나보다 낫다"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는 대단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남보다 위에 놓던 자리에서 내려오는 그 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유다는 그 한마디를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손해를 각오하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쌍둥이가 태어납니다. 손이 먼저 나온 아이를 다른 아이가 밀치고 나옵니다.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29절) 하여 붙은 이름이 베레스입니다. "터짐, 파열"이라는 뜻으로, 순서가 깨졌다는 표시이자 막힌 데가 뚫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마태복음 1장 3절에 그대로 기록됩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하나님께서는 이 부끄러운 한 장을 지우지도, 미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대로 족보에 새겨 두셨습니다.
우리도 어느덧 사회적 위치, 경제적 위치, 가정에서의 위치를 생각하며 숨기고 싶은 것들을 미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런 것들을 미화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래서 더 진실하고 더 정직합니다.
38장은 이렇게 두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유다는 형제에게서 내려갔고, 하나님은 그 내려간 자리까지 따라 내려오셨습니다. 훗날 유다는 달라집니다. 창세기 44장 33절에서 그는 "주의 종으로 이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라고 고백하며, 아우 대신 자기가 종으로 남겠다고 합니다. 동생을 팔자던 그 입술이 동생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한마디에서 시작된 행동이었습니다.
유다를 바꾼 것은 그의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끝까지 계보 안에 두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거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유다의 집안에서 한 분이 나십니다. 유다는 부끄러워서 내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내려오셨습니다. 유다는 아우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실제로 종이 되어 십자가까지 가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덮어 두고 싶은 자리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덮인 자리를 피해 가지 않으시고 그 자리를 터뜨려 은혜를 내려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도 덮어 두고 내려온 자리가 있습니다. 옮기면 잊힐 줄 알았는데 그대로 따라와 있는 것을 봅니다. 남에게는 빠르고 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느린 우리의 입술을 고쳐 주시옵소서. 성령님, 저희가 스스로 고쳐 보려다 지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우리를 붙드시는 줄 알게 하여 주시고, "그는 나보다 옳다" 이 한마디가 오늘 우리의 입에서 나오게 하시며, 미뤄 두었던 약속을 오늘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