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은 20개에 팔려 애굽으로 끌려간 이야기(37장) 다음에, 성경은 갑자기 시선을 형 유다의 집안으로 옮깁니다. 거기에는 예배도 제단도 없습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 두 아들의 죽음, 며느리를 속인 시아버지, 창녀로 오해한 동침, "끌어내어 불사르라"는 명령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가장 덮고 싶어 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장을 지우지도, 미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태어난 아이 베레스의 이름이 마태복음 1장 3절, 예수님의 족보에 그대로 오릅니다. 창세기 38장은 "내가 덮고 싶은 자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1절은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떠나 내려가서"라고 기록합니다. "내려간다"는 지역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자리에서 발을 빼고 세상 쪽으로 옮겨 가는 걸음을 그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유다는 동생을 팔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었고(37:26-27), 그 일 후 형제를 떠납니다. 그러나 자리를 옮긴다고 지나온 일이 거기 남지는 않습니다. 유다가 덮고 온 것은 그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과부로 지내라"고 합니다. 말은 약속이지만, 성경은 그 속마음을 밝힙니다 — "셀라도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처음부터 줄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14절). 유다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뤄 두었습니다. 거절은 상대가 다음 길을 찾게 하지만, 미룸은 상대를 그 자리에 묶어 둡니다.
며느리의 임신 소문에 유다는 즉시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24절) 합니다. 자기 죄에는 몇 해를 침묵하던 사람이 남의 일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말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당시의 신분증)를 내어놓자,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26절, 히브리어 "차드카 밈멘니")라고 고백합니다. 다말이 흠 없이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의무를 알면서도 미룬 자기가 그보다 아래라는 고백입니다. 회개는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자기를 남 위에 놓던 자리에서 내려오는 그 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태어난 쌍둥이 중 손을 내밀었다 들어간 형을 밀치고 나온 아이에게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29절) 하여 베레스("터짐")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막힌 데가 뚫렸다는 표지입니다. 훗날 유다는 창세기 44장 33절에서 아우 대신 자기가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동생을 팔자던 입술이 동생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한마디에서 시작된 변화입니다. 유다를 바꾼 것은 그의 결심이 아니라, 그를 끝까지 계보 안에 두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유다는 부끄러워서 내려갔지만, 그 집안에서 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내려오셨고, 우리 대신 실제로 종이 되어 십자가까지 가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